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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戰-코로나19에… ‘분배-복지’ 대신 ‘反이민’ 우향우[글로벌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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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유럽-중동 곳곳서 극우정치 바람

고물가에 서민들 생활고 지속되자 기성 정당-좌파에 지지층 떠나

미국서는 트럼프 지지율 상승세… 사민주의 본산 북유럽서도 극우 바람

日 오사카 기반 극우 정당 ‘유신회’… 지역 단체장 석권, 정계 우경화 속도

《세계 곳곳 극우정치 바람

미국, 유럽, 일본, 중남미, 중동 등 세계 곳곳에서 반이민, 민족주의, 종교적 원리주의 등 극우 성향을 지닌 정치인과 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우향우’의 배경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다툼, 공급망 교란 등에 따른 경제난이 꼽힌다. 세계 곳곳에서 고물가와 경기 둔화가 고착화하면서 ‘복지’와 ‘불평등 해소’를 외치는 좌파는 힘을 잃고 ‘모든 문제는 다 외부인의 탓’이라고 주장하는 극우 세력이 반사 이익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유럽, 일본, 중남미, 중동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극우 성향을 지닌 정치인과 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반(反)이민, 민족주의, 종교 원리주의 성향 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지지층을 움직이고 있다.

이런 ‘정치적 우향우’의 배경에는 경제난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1년을 넘기며 길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에 따른 공급망 교란, 경제 블록화 등까지 겹쳐 주요국이 모두 고물가와 경기 둔화를 겪고 있다.

이에 당장의 생활고를 해소하기를 바라는 서민들이 “경제 악화는 다 외부인의 탓”이라고 외치는 극우 정치인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좌파가 외치는 ‘분배 중시, 복지 확대’ 등의 구호가 먹히지 않으면서 그 반사 이익을 극우 세력이 누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 와중에 기성 정치인이 먹고사는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 서민과 괴리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 또한 극우 세력의 약진을 부추기고 있다.

● 기소 후 지지율 급등한 트럼프 당내 경선 무의미

“미국은 난민 캠프가 아니다”라며 집권 내내 반이민 정책을 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미 전·현직 대통령 최초로 기소된 후 연일 지지율이 상승세다. 그를 향한 보수 유권자의 결집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야당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수준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4∼6일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회사 입소스가 공화당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58%를 기록했다. 기소 전인 지난달 14∼20일에 비해 14%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경쟁자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지지율은 30%에서 21%로 떨어졌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대사 등 이미 출마를 선언했거나 조만간 출마가 예상되는 인사의 지지율은 3, 4%대에 불과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종종 극우 집회에 등장해 반난민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지난해 7월에는 “불법 체류자 수백만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건 ‘침략’”이라고 외쳤다.

그는 재임 중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각종 행정명령을 발동해 국경을 잠갔다. 이미 미국 땅에 들어온 중남미 어린아이까지 부모와 떼어놓고 열악한 시설에 보냈고, 불법 체류자를 보호하는 지방정부에 지원을 중단했다. 인권 탄압 비판이 들끓었지만 이것이 미국에 꼭 필요한 정책이었으며 재집권하면 다시 시행하겠다고 외친다.

● ‘사민주의’ 북유럽도 극우 열풍

유럽은 극우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서유럽, 헝가리 불가리아 등 동유럽은 물론이고 사회민주주의 본산으로 일컬어지는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도 극우 정당이 득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핵심 생필품인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급등한 여파가 크다는 진단이 나온다.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스페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등의 통치를 겪은 유럽에서는 극우 전체주의 성향의 정당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해지면서 “극우 정당의 득세를 용인하면 또다시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기존의 우려가 옅어지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2일 핀란드 총선에서는 극우 핀란드인당이 우파 국민연합당에 이은 원내 제2당으로 약진했다. 집권 사민당은 3위로 처졌다. 다음 달 안으로 연정 구성을 완료할 국민연합당은 사민당과 핀란드인당 중 어느 쪽을 파트너로 선택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만일 국민연합당이 핀란드인당을 택하면 핀란드 최초로 극우 정권이 탄생한다.

핀란드인당을 이끄는 리카 푸라 대표는 “길거리 갱단과 젊은 범죄자 대부분은 이민자”라고 주장하는 반난민 정치인이다. 2021년 1월 0.9%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 2월 9.1%까지 치솟는 등 고물가와 경제난이 만연하자 핀란드인당이 수혜를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9월 스웨덴 총선에서도 극우 스웨덴민주당이 역시 원내 2당에 올랐다. 임미 오케손 대표는 “이슬람 여성이 아이를 많이 낳아 스웨덴 연금이 고갈될 수 있다”며 유럽이 이슬람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외친다.

지난해 4월 대선 결선 투표를 치른 프랑스에서 지금 다시 선거를 치르면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전 국민연합(RN) 대표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이길 것이란 여론조사 또한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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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공개된 여론조사회사 엘라브와 BFM-TV의 가상 대선 결선 투표 지지율 조사에서 르펜 전 대표는 55%를 얻어 마크롱 대통령(45%)을 10%포인트 앞섰다. 지난해 4월 대선 결선 투표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르펜 전 대표에게 17%포인트 차로 이겼지만 이 수치가 역전됐다. 르펜 전 대표는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 금지, 유럽연합(EU)과의 결별, 러시아와의 공조를 주장하는 반이슬람, 반EU 성향이다.

2010년부터 집권 중인 ‘동유럽의 트럼프’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유럽인과 비유럽인이 섞인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유럽이 기독교 정체성으로 회귀해야 구원받는다” 등의 발언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 이후 100년 만의 극우 지도자인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취임했다. 멜로니 총리는 자신을 “여성, 어머니, 기독교인”으로 정의할 정도로 이슬람에 적대적이다. 이탈리아에 입항한 난민 구조선의 입항을 더디게 하는 정책도 펴고 있다. 이탈리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또한 2021년 1월 0.4%에서 올 2월 9.1%로 뛰었다.

2019년 스페인 총선에서도 극우 정당 ‘복스’가 원내 제3당으로 약진했다. 프랑코 총통이 39년간 철권통치를 펼친 스페인에서 극우 정당이 원내에 입성한 것은 처음이다. 복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구호를 차용한 “스페인을 다시 위대하게”를 주장하고 있다. 2일 총선을 치른 불가리아, 지난달 지방선거를 실시한 네덜란드에서도 극우 정당이 모두 선전했다.

● 日 극우 ‘일본유신회’ 약진

9일 일본 지방선거에서는 오사카 기반 극우 정당 ‘일본유신회’가 2010년 설립 후 오사카 이외 지역에서 처음 광역단체장을 배출했다. 이날 유신회 소속의 야마시타 마코토(山下眞) 전 이코마 시장은 나라현 지사로 선출됐다. 최근 주요 선거에서 유신회가 약진하고 있는 데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안보 위협 또한 고조되면서 일본 정계의 우경화 속도 또한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유신회 산하의 지역 정당 ‘오사카유신회’를 이끌고 있는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오사카부 지사 겸 대표 또한 이날 재선에 성공했다. 오사카 시장 선거에서도 당적이 같은 요코야마 히데유키(橫山英幸) 전 오사카부 의회 의원이 당선됐다. 오사카에서는 4년 전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오사카유신회 소속 후보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을 모두 휩쓸었다.

유신회의 설립자 격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지사는 2013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운영했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위안부는 필요했다. 한국도 비슷한 일을 했으니 서로 반성해야 한다” 등의 망언을 한 인물이다. 요시무라 대표 또한 “일본군의 위안부 관여 정도와 피해 규모가 불명확하다”고 주장한다.

● 네타냐후-모디-에르도안도 장기 집권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유대 극우 민족주의, 반이란 등의 노선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12월 세 번째 총리직에 오르며 극우 세력과 손잡았다.

내각의 핵심 보직인 국방부 수장을 맡고 있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장관 겸 극우 정당 ‘오츠마예후디트’ 대표는 “이스라엘에 충성하지 않는 아랍계 국민을 추방하자”고 외친다. 그는 최근 전체 인구의 약 20%인 아랍계를 탄압하기 위해 군경과 별도 조직인 ‘국가방위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조직이 유대인 정착촌 확대 등에 쓰일 것이란 우려가 높다. 베잘렐 스모트리흐 재무장관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아예 없다”고 했다.

2014년부터 집권 중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힌두 극우주의, 반이슬람 정책을 펴고 있다. 그는 구자라트 주지사였던 2002년 힌두교도의 공격으로 무슬림 2000여 명이 숨진 폭동 사태를 방조하고 사실상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2005년 당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그의 미국 입국을 불허했다. 2019년에도 그의 반무슬림 정책으로 유혈 시위가 벌어져 수십 명이 사망했다. 당시 그는 연설에서 “복장만 봐도 누가 (무슬림) 폭력배인지 안다”며 무슬림 시위대를 비판했다.

‘뼛속까지 이슬람 신자’를 자처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또한 2003년부터 장기 집권 중이다. 그는 세속주의 국가인 터키를 이슬람 신앙이 지배하는 신정일치 국가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지 않다” “여성이라면 최소 아이 셋은 낳아야 한다” 등의 발언으로도 유명하다.

● ‘브라질의 트럼프’ 보우소나루도 복귀 코앞

지난해 10월 대선 패배 후 지지층의 불복을 선동한 혐의를 받고 있는 ‘브라질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도 가시화했다. 대선 패배에 불복하고 지난해 12월 30일 미국으로 떠났던 그는 3개월이 흐른 지난달 30일 귀국했다.

그는 귀국 일성으로 “나는 은퇴를 하지 않았다”며 정계 복귀 의사를 밝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의 각종 정책을 비판하며 “좌파는 잠시만 권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이끄는 자유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약진하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이 여세를 몰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대선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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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반난민, 총기 옹호, 성차별 발언 등 트럼프 전 대통령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2017년 연설에서 “원주민은 기생충”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참석한 미 극우 집회에도 연사로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인 경제난이 극우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장은 “특히 미중 갈등이 잦아들지 않는 한 유럽에서의 극우 바람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기가 둔화하는 와중에 미중 패권 경쟁,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각국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는 현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유럽 각국이 EU 체제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각국의 발언권이 줄어든 것 또한 고립주의, 민족주의 득세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종곤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는 “경기침체 때 경제 관련 의제가 투표 결과를 결정짓는 ‘경제 투표(economic vote)’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며 향후 각국 선거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맥락에서 2024년 미 대선 결과 또한 내년 중반 미 물가, 성장률, 공급망 교란 상황 등 경제 상황이 결정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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