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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이슈 미술의 세계

[빵 굽는 타자기]'이교도 미술'로 읽는 종교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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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교(異敎·Pagans)’라는 용어는 보통 부정적인 신앙을 일컫는 데 자주 쓰인다. 특히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소위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다른 종교나 신앙을 비판할 때 많이 쓰인다. 자신들의 종교는 올바른 믿음이고, 이교는 미신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단어 자체에 녹아 있다.

이 ‘Pagans’란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Paganis’에서 왔다고 하며 원래 뜻은 ‘시골사람’이라고 한다. 단어 자체가 본래 이교도라는 극단적 의미보다는 토착신앙을 뜻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종교학, 특히 고대 종교 전문가인 저자는 이 토착신앙이란 의미에서 이교가 갖고 있는 역사성과 현대까지 이어진 문화적인 영향에 대해서 세세히 설명해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교의 범위는 매우 넓다. 글자 그대로 기독교를 제외한 서양, 동양, 중동 등의 고대 토착신앙 전반이 소개된다. 고대 그리스·로마신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부터 중국의 삼황오제와 일본의 신사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다양한 나라의 신앙과 문화에 관한 탐험이 이어진다.

현대에는 오히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필수 요소로 등장하는 마법진, 마녀의 역사 이야기나 타로카드, 주역 등 점술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실제 이런 마법이 큰 힘을 발휘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이러한 믿음이 오랫동안 전승된 것은 중동 지역의 험난한 자연환경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의 표지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각종 그림들도 눈을 즐겁게 한다. 표지에 등장한 고대 그리스에서 신탁을 받던 무녀 ‘피티아(Pythia)’의 모습부터 바로크 시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루벤스의 1636년작 ‘파리스의 심판’ 등 신화를 배경으로 그려진 대작들과 그 속의 의미도 함께 풀어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문화나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학문적으로 완성된 중심부 지역의 정통 종교만이 절대적 믿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교라 불리던 토착신앙들도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실제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로마제국 입장에서 기독교 역시 동방에서 건너온 여러 토착신앙 중 하나였다. 로마인들은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나 페르시아의 미트라교 등 다양한 외래 종교를 상당히 개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붕괴와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믿음의 단일성, 보편화가 강조되면서 하나의 통일된 국교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후 정통 종교와 이교라는 분리가 생겨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됐다.

인종차별, 각종 사회적 편견 등과 마찬가지로 결국 이교에 대한 배척도 문화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과 타 종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순수하게 종교에 대한 교양과 미술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교도 미술 | 이선 도일 화이트 지음 |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56쪽 | 3만3000원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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