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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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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만문제 거리두기' 발언에 발칵…美·EU "中방문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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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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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중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며 “대만 문제는 유럽의 이익이 아니다” “(프랑스는) 강대국들의 속국이 될 순 없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시간) “그의 발언이 미국과 유럽(EU)의 동맹국들의 반발을 불러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4~8일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중국 측은 마크롱 대통령을 열병식·레드카펫으로 극진히 대접했고, 양측은 프랑스 기반의 유럽 항공사인 에어버스의 신규 공장을 중국 톈진(天津)에 짓기로 한 데 이어 에어버스의 항공기 160대 판매 계약도 승인했다.

이어 9일 귀국길에 오른 마크롱 대통령은 공군 1호기에서 자국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패닉에 빠진 나머지 ‘우리는 미국의 추종자’라고 스스로 믿게 되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면서 “유럽인들은 ‘대만의 (위기)고조가 우리의 이익인가?’에 답할 필요가 있다. 정답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어 “더 나쁜 건 우리 유럽인들이 이 주제(대만)에 있어 추종자가 돼야 한다거나, 미국의 의제나 중국의 과민반응에 좌우되는 것”이라고 했다. “초강대국 사이에 긴장이 과열되면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시간이나 자원을 갖지 못 하게 되고, 속국(vassals)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당초 인터뷰를 실은 폴리티코는 마크롱의 이 같은 발언이 “유럽이 ‘제3의 초강대국’이 되기 위한 ‘전략적 자율성’ 이론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유사한 내용은 중국 외교부의 정상회담 설명 자료에도 담겼다.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옹호했으며, 프랑스는 편을 택하지 않고 단결과 협력을 옹호한다고 했다”는 대목이다.



‘속국·추종자’ 발언에 美 냉소·유럽 격앙



그의 수위 높은 발언에 미국은 물론 유럽 안에서도 냉소적인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미 공화당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10일 트위터 영상을 통해 “마크롱이 유럽 전체 입장을 대변하는 게 맞나? 유럽이 대만 문제에서 미·중 사이에 편을 들지 않겠다고 나온다면 미국도 편을 들지 않겠다”면서 “당신들이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문제를 처리하라”고 비판했다.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사설을 통해 “마크롱의 어리석은 실책”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WSJ는 “그의 도움 되지 않는 발언은 태평양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억지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유럽에서 미국의 개입을 줄이자는 미 정치인들을 독려하는 꼴”이라면서 “바이든이 (아침에)깨어 있다면 마크롱에게 전화해 트럼프를 재당선시키려는 거냐고 물어봐야 한다”고 비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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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의 쑹위안(松園)에서 환담하고 있다. 시 주석은 6일 베이징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이튿날 베이징에서 약 1900km 떨어진 광저우까지 이동해 마크롱 대통령을 환대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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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미 백악관은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10일 “프랑스와 미국의 양자 관계는 말할 수 없이 좋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커비 조정관은 “우리 해군은 인도 태평양에서 모두의 일치된 노력에 따라 공동 작전을 수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사이에선 보다 격앙된 반응이 흘러 나왔다. FT에 따르면 리투아니아의 야당 의원인 도빌레 사칼리엔은 “마크롱이 지정학적으로 무지하다”면서 “EU와 나토의 전략적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맹폭했다. 유럽의 반중 의원 단체인 중국에 관한 초당적 국제의원연맹(IPAC)도 마크롱을 겨냥한 비판 성명을 냈다.

독일 연방하원의 중도 우파 성향 노르베르트 뢰트겐 의원(기독민주당)은 “마크롱의 이번 방중은 중공에겐 완벽한 승리, 유럽에는 외교적 재앙이었다”며 “마크롱은 미국과의 파트너십이 아닌 경계선을 택함으로써 유럽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의회의 중국 정책 대표단 의장인 라인하르트 부티코퍼 의원도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에 관한 마크롱의 구상은 현실을 넘어선 몽상”이라고 비판했다.



“독자 노선, 佛전통” 해명에도 “시기 잘못 골라”



이와 관련 마크롱 대통령 측은 FT에 “샤를 드골(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 이후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프랑스의 오랜 입장”이라면서 “이번 방중은 중국과 전반적으로 관계를 맺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향해서도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게 할 순 없지만, 러시아를 으깨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유럽의 독자 노선을 강조한 마크롱의 이번 발언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방미 등과 맞물려 매우 민감한 때 이뤄졌다는 차이가 있다. “시기적으로 끔찍한 때를 골랐다”(WSJ)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마크롱 대통령이 파리로 돌아간지 불과 몇시간 만에 대만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 훈련을 개시했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도록 공동 압박 전선을 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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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중국 동부전구 소속 함정이 이날 대만 주변에서 돌입한 ‘합동 날카로운 칼날(聯合利劍·연합이검)’ 훈련에 참여했다. CCTV 캡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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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싱크탱크 전략연구재단의 앙투안 본다즈 연구원은 “매우 안일한 방중에 더해 떠나자마자 대만 전역에 중국의 군사 훈련이 펼쳐졌다”면서 “마크롱은 중국과의 거리는 전혀 보여주지 않은 채 미국을 비판하는 서방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했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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