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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기습 감산으로 유가 방어 나선 OPEC+…긴축 완화에 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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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잠잠해지던 물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주요 산유국들이 유가 방어를 위해 인위적 생산 조절에 나서면서, 원유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같은 국제유가발(發) 물가 상승이 재현되면, 긴축 정책 완화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어 세계 경제 불안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하루 116만 배럴 기습 감산



중앙일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 소속 일부 국가들이 다음 달부터 연말까지 자발적 추가 원유 감산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감산에 동참한 나라들의 총 감산량은 하루 최대 116만 배럴이다. 지난해 10월 OPEC+ 회의에서 결정한 감산량(하루 200만 배럴)과 러시아의 자체 감산량(하루 50만 배럴)까지 합하면 지난해 10월과 비교해 하루 총 366만 배럴의 원유 생산이 줄어드는 셈이다. 세계 원유 수요의 약 3.7%다.

기습 감산 소식에 이날 6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장중 한때 8% 이상 오르며 배럴당 85달러까지 치솟았다. 최근 국제유가는 미국의 전략비축유 방출과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에 15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었다. 이번에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줄이기로 한 것도 경기침체에 대응해 원유 가격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가 오를 요인 많은데 대응 수단 없어



중앙일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제는 OPEC+가 지난해 감산을 결정할 때와 달리, 국제유가를 끌어 올릴 요인들이 지금은 더 많다는 점이다. 수요 측면에 미국의 여름철 휘발유 수요 성수기인 ‘드라이빙 시즌’이 오는 6월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탈피로 하반기 원유 수요는 더 늘 수 있다.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감산을 주도하는 사우디는 최근 원유 생산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다. 이미 지난해 사우디는 미국 요청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원유 생산량을 줄이는 등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협조도 기대할 수 없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감산 결정은 세계 경기 침체 전에 국제유가를 올려 국내 사업 자금을 조달하려는 사우디와 원유 비축량을 보충하기 위한 러시아 간의 협상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그나마 유일한 대응수단이었던 미국의 전략비축유 방출도 한계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약 1억80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해 현재 전체 용량의 절반 수준인 3억7100만 배럴만 보유하고 있다. 주요 산유국들이 생산량 조절에 나서면, 원유 가격은 잡지 못하고 전략비축유만 동이 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국제유가 100달러 가나…인플레이션 비상



이런 상황 때문에 전문가들도 국제유가 전망치를 올리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연말 브렌트유 예상 가격을 배럴당 90달러에서 95달러로, 내년 말 가격은 배럴당 95달러에서 100달러로 높여 잡았다. 대니얼 하인즈 호주뉴질랜드뱅킹그룹(ANZ) 수석 상품 전략가는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연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도달할 가능성이 “이번 감산 조치로 확실히 커졌다”고 했다.

국제유가 상승이 긴축 정책 완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상당 부분이 국제유가 하락에서 나오고 있는데, 유가가 만약 재상승하면 물가 상승 우려에 기준금리 상단을 더 올리거나, 상당 기간 ‘피벗(기준금리 인하)’ 없이 기준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3일 시카고선물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오는 5월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원유 감산 소식이 전해진 후 하루 새 48.4→60.6%로 올랐다. 같은 기간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은 51.6→39.4%로 떨어졌다.

국제유가 상승은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특히 부담이다. 3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3월 무역적자 누적액은 224억100만 달러다. 그나마 최근 국제유가 하락에 지난달 에너지 수입액이 전년보다 11.1% 줄어들면서 적자 부담을 다소 덜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경우 무역적자 증가와 물가 상승 우려가 다시 커질 수 있다. 또 국제유가 상승은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 환율 불안도 가져올 수 있다. 실제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14.6원 떨어진 1316.5원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달 10일(1324.2원) 이후 한 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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