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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尹정부의 고무줄 보편인권…강제동원은 포기하고 일본납치자는 떠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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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 협력을 위해 통일부가 일본 내각관방 간 정례 소통채널을 가동한다. 대표적 북·일관계 난제를 우리 정부가 떠안아 한국인 억류자나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등 우리 인권문제 해결 원칙은 내던진 정부가 엉뚱하게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보편인권’ 문제란 이유로 협력을 주장하는 모양새다.

31일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 이산가족, 북한 억류자 문제를 담당하는 인도협력국과 일본에서 피랍자 문제를 소관하는 내각관방 간 정례 소통채널을 만든다. 국장급 채널로 검토 중이며 올 상반기부터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정례 소통하는 채널을 실무자급에서 공식 가동하는 것은 처음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22∼25일 일본 외무성 초청을 받아 방일했을 때,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에게 먼저 제안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 역시 ‘보편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협력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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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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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발 묶고 뛸 건가”

납치자 문제는 일본 내에서 북·일관계의 최우선 과제이자 최대 난제다. 1970∼80년대 일본인 실종자가 북한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확인된 뒤 2000년대 초 북·일 정상회담에서 5명을 일본으로 송환하고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이후 이견으로 북·일관계는 파탄으로 흘렀다. 일본은 17명이 북한에 납치됐다고 주장하고, 북한은 13명이 입북해 5명을 송환하고 8명은 사망했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추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북한은 종료된 문제라는 입장이다.

북한 미사일이 고도화되기 전까지, 납치자 문제는 북·일관계의 전부나 다름없다. 일본 정부는 주변 6개국이 각축전을 벌이는 한반도 문제에 자국이 개입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고리로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활용해왔다.

우리측 억류자와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연계시켜 우리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직 고위 관료는 “우리 발을 묶어놓고 달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고위 관료도 “이산가족 상봉과 같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성사됐던 최소한의 인도적 문제조차 리스크를 떠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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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정상회담 결과로 일본인 납치피해자들이 풀려나 귀국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섣부른 접근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전략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저 일본에 가서 일본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이야기해주고 오는 것이 우리나라 통일부 장관의 역할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일본이 한반도 평화보다는 긴장 고조를 통해 자국 평화헌법 수정 등의 목적 있는 상황에서 납치자 문제를 부각는 것이 어디에 이익이 되느냐”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가 한국인 억류자를 특수이산가족으로 분류해 인도협력실에서 소관하는 이유는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 사람들을 데려오는 성과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27일 정례브리핑에서 “한·일 공통 관심사 갖고 있는 문제이고 인도적 차원 해결 시급하기도 하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 서로 관심을 공유하고 협의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해나간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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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하시마섬(군함도) 탄광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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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권은 어디가고 일본 인권?

윤석열정부가 ‘보편 인권’을 내세워 일본 납치자 문제를 협력을 약속하는 것은 국내 가장 대표적 인권문제인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서 보여온 모습과도 모순된다. ‘일본통’ 전문가들이 일본 내에서 납치자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설명하면서 흔히 드는 비유가 “일본의 납치자 문제는 우리 일본군‘위안부‘ 문제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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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된 영상에서 ‘만삭의 위안부’로 알려진 박영심 할머니가 2차 대전 막바지 연합군에 의해 구출된 뒤 두 팔을 들어올려 만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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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강제동원 피해가 인류 보편 인권 문제임을 내세워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왔다. 강제 동원된 노무자 및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 당사자가 수백만명이다. 1990년대 들어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목소리를 낸지 20여년만에 2012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정부 인사, 정치인들이 일본군‘위안부’를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로 표현했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일본 하시마섬(일명 ‘군함도’) 탄광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노동자들에 대해 “그들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가혹한 조건 하에서(under harsh condition)”, “강제로 일했다(forced to work)”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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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010년 한국을 찾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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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일제 강제동원 현장인 하시마섬(일명 ‘군함도’) 등재 여부 결정을 앞두고, 미국 하원의원들이 2차대전 전쟁포로 역사를 포함하지 않은 채로 등재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서한을 보냈다. 사진은 연명서한.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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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문제가 인권 문제라는 규정 하에 정립된 해결 원칙은 피해자중심의 해결 추구, 국가 간 협정(1965년 한·일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별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 정부 들어 강제동원 문제가 인권 문제로서 갖는 원칙을 돌연 다 포기해놓고, 일본 납치자 문제는 우리가 져야 할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보편인권’을 명분으로 힘을 싣는 셈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이같은 현상을 “위험한 진영 외교”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권을 진영 논리로 만들고 있는 현상”이라며 “대통령이 냉전적 진영논리 하의 자유 진영 속에서 들어가서 다른 국가들은 적대하고, 진영논리에서 벗어나는 인권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또 진영논리를 위해서는 한국의 인권 문제는 종속 변수로 삼게 될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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