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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장관 해임' 폭주 네타냐후에 민심 폭발…이스라엘 20만 시위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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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개혁’이란 명분을 내세워 사법부 무력화를 강행 중인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 시민들이 총궐기했다. 3개월째 이어져온 반정부 시위 와중에 사법 개혁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국방장관이 전격 해임되자 2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은 “빨리 타협점을 찾으라”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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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텔아비브에서 열린 사법 개혁 반대 시위 집회에서 시위대가 도로에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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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밤 텔아비브‧예루살렘‧하이파‧베르셰바 등 이스라엘 150여 지역에서 최대 20만여 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텔아비브의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철제 바리케이트를 부수며 거칠게 항의했다. 일부 시위대는 도로 한복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관저 밖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몰려 사법 개혁 철회를 요구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국제공항은 이날 항공기 이륙이 중단됐다.

경찰은 시위대 해산을 촉구하며 물대포를 쏘며 대응했다. 곳곳에선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몸싸움 등 충돌이 이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시위는 이스라엘의 최근 10년새 가장 격렬한 시위”라고 전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는 “이스라엘이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이후 가장 큰 위험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이스라엘 내 최대 노동조합인 히스타드루트(Histadrut)는 주요 기업들과 함께 총파업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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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총리가 국방장관을 해임하자 예루살렘 시민들이 국기를 들고 사법 개혁 반대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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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쿠데타' 분노한 시민, 장관 해임에 폭발



이날 시위는 네타냐후 총리가 요아트 갈란트 국방장관을 전격 해임했단 소식이 알려지면서 불붙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우경화한 정부인 네타냐후 정부가 지난해 12월 출범 직후 최우선 과제로 추진 중인 사법 개혁안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갈란트 장관 경질을 계기로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이 개혁안은 대법원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의회가 확보하는 것으로, 정부가 대법관 임명을 통제하고 대법원 결정을 무효화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게 주요 골자다.

개혁안이 통과되면 대법원이 사법 심사를 통해 의회의 입법을 막을 수 없고, 다른 법률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 결정도 단원제 국회(크네세트)의 단순 과반 의결만으로 뒤집을 수 있다. 아울러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조종할 수 있도록 해 임명에 대한 정부의 개입 여지를 늘렸다.

야당과 법조계‧시민단체 등은 이를 법원과 검찰을 무력화시켜 정부에 종속시키는 ‘사법 쿠데타’로 보고 있다. 시민들은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석달째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개혁안이 시행될 경우, 여러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 중인 네타냐후 총리 본인이 ‘셀프 무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네타냐후 방탄법’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해임된 갈란트 장관은 전날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네타냐후의 사법개혁이) 우리 사회의 균열을 증가시키고 군대의 혼란을 야기해 이스라엘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사법 개혁을 연기해야 한다”고 반기를 들었다. 집권당인 리쿠드당 출신 인사가 사법 개혁에 공개 반대를 표명한 건 갈란트 장관이 처음이다.

이어 아사프 자미르 미국 뉴욕 주재 이스라엘 총영사도 자발적 사임을 밝히면서 “(정부의) 사법 개편이 우리 민주주의 체제의 기초를 훼손하고 법치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인 베니 간츠 야당 국회의원은 “총리는 국가 안보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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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개혁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가 경질된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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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네타냐후 연정 붕괴 위기



이번 사태는 안 그래도 삐걱이는 네타냐후 연정에 위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 당시 네타냐후의 리쿠드당(32석)은 '독실한 시오니즘' 등 극우정당과 우파 블럭을 형성해 크네세트 120석 중 과반인 64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야권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갈란트 장관의 해고에 대해 “최악”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극우성향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등은 입법을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자칫 극우 동맹이 반란을 일으키면 연정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예루살렘 소재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의 기드온 라하트 선임 연구원은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극우와 동맹을 맺었지만, 그가 통제권을 쥐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 “(네타냐후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라고 비유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도 “사법 개혁이 꼭 필요하지만, 집안이 불타고 국가의 분열이 커질 때 우리의 임무는 이것부터 막는 것”이라며 표결 연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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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에서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대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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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심히 우려…타협이 시급하다"



한편, 이스라엘 내 시위가 격화되자 미국 백악관은 즉각 아드리엔 왓슨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우리는 작금의 이스라엘 상황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다”면서 “타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주의 사회는 견제와 균형에 의해 강화되며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는 가능한 한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추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긴밀한 관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요한 중동 동맹국인 이스라엘에 대한 공개 비판을 꺼려왔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번 성명은 매우 신랄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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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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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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