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기로 벨라루스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등 서방 진영은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국 수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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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6일 CBS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푸틴 대통령이 약속을 이행했거나 핵무기를 옮겼다는 그 어떤 징후도 보지 못했다”며 “우리는 (러시아의 핵무기 이동 등 관련 상황을) 매일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부터 (러시아의 핵위협 발언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전략 억제 태세를 변경할만한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며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의도가 있다는 징후도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커비 조정관은 또 “핵전쟁은 일어나선 안 되고, 어떤 핵전쟁도 승리할 수 없다”며 “핵무기를 사용하면 분명히 중대한 선을 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최근 영국이 우크라이나군에 챌린저2 전차와 함께 열화우라늄탄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러시아 측의 반발에 대해선 “열화우라늄탄은 방사성 위험이 없고, 러시아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전술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지대지 미사일을 벨라루스에 이미 배치한 상태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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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우라늄탄은 고열로 장갑을 뚫는 등 대전차 공격에 효과적이지만, 핵폐기물을 이용해 제조하는 만큼 그간 국제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환경오염 문제 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미군은 1991년 걸프전을 시작으로 여러 전장에서 사용해 국제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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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식 핵공유' 빗대자 반박
푸틴 대통령이 거론한 ‘나토식 핵공유’를 두고도 반박이 나왔다. 오아나 룬게스쿠 나토 대변인은 “러시아가 나토의 핵공유에 대해 언급한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나토는 국제적인 약속을 전적으로 존중해 행동하고 있다”고 이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러시아는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ㆍ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하고 있다”며 “뉴스타트에 빨리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룬게스쿠 대변인은 나토식 핵공유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설명에서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현재 미국은 독일 등 나토 5개 회원국의 6개 공군기지에 전술핵폭탄을 배치하고 있다. 유사시 F-16ㆍ토네이도 전투기로 이를 투발할 수 있다. 미국이 나토와 협의는 하면서도 최종 통제권을 갖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이를 겨냥해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더라도 러시아가 핵통제권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러시아에 전술핵무기 배치를 요청한 벨라루스에 대한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호세프 보렐 유렵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벨라루스가 러시아 핵무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무책임한 긴장 고조 행위”라며 “벨라루스는 지금 그 일을 멈출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EU는 추가 제재로 대응할 태세가 돼 있다”고 압박했다.
서방 각국은 벨라루스가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를 적극 도왔다는 이유로 주요 수출품인 석유 및 관련 제품, 칼륨비료 등에 대해 금수 조치를 하고 있다. 또 벨라루스 주요 은행들에 대해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ㆍ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한 상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서방의 추가 제재가 벨라루스의 전술핵무기 배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긴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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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안보리 긴급회의 요청
EU와 나토 핵심국인 독일ㆍ프랑스 등도 러시아의 결정을 비판했다. 이날 독일 정부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또 다른 핵위협 시도”라며 “그가 끌어들인 나토식 핵공유 비유는 사태를 오도하는 것으로, 러시아의 행보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프랑스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결정은 유럽의 전략 안정성을 위한 통제 체제를 해치는 요인”이라며 “핵보유국이 가져야 할 책임감을 보여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이번 합의를 재고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인 바흐무트에서 우크라이나군 T-72 전차가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포사격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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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ㆍ리투아니아 등도 러시아의 발표 내용을 맹비난하면서 서방 진영에 추가 제재 등 대응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결정은 벨라루스를 ‘핵 인질’로 삼은 것”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핵무기를 이용한 침략 위협을 방지할 특별한 책임이 있는 안보리가 크렘린 궁(러시아 대통령실)의 핵 공갈에 대응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기대한다”며 “세계는 인류 문명의 미래를 위협하는 사람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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