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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식수원 인근 파크골프장 난립, 책임은 누가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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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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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비 44.7% 늘어나
경상도에서만 93곳 운영 중
영남지역, 22곳 무허가 조성
12곳은 규모 임의로 확장해

전국 각지에 파크골프장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정부의 소홀한 관리·감독을 틈타 지자체가 불법으로 조성한 파크골프장까지 속속 생기고 있다. 식수원인 낙동강변에 만들어진 파크골프장은 절반 이상이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다. 골프장 조성 및 관리 과정에 사용되는 농약 등으로 환경오염 우려가 크지만, 지자체와 정부가 각각 노인복지 등을 이유로 불법 파크골프장을 묵인하고 있다.

■ 환경부 뒤늦게 전수조사

파크골프장은 공원(park)와 골프(golf)를 합친 말로 소규모 녹지공간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26일 사단법인 대한파크골프협회 자료를 보면 국내 파크골프장 수는 지난해 기준 327개로 집계됐다. 2019년(226곳)과 비교하면 44.7%나 늘어난 규모다. 경남에는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많은 파크골프장 50곳이 운영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곳은 낙동강과 금호강 등 영남지역 국가하천 파크골프장들이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에 따르면 영남지역 전체 74곳 중 34곳(45.9%)이 허가를 받지 않거나 임의로 확장했다. 파크골프장 허가 및 단속은 그간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파크골프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국 곳곳에 조성되기 시작했지만 불법 설치 등 문제가 떠오른 것은 근래 들어서다.

영남권에 불법 설치된 34곳 중 22곳은 하천 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조성됐다. 나머지 12곳은 허가를 받긴 했지만 골프장 규모를 임의로 확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천법에 따라 사업계획 면적이 1만㎡ 이상이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미리 받아야 한다.

파크골프장의 불법 사실이 무더기로 확인되면서 낙동강환경청은 관리 소홀 문제를 인정했다. 환경당국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파크골프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설마 불법이겠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게 사실”이라면서 “소음이나 공원 이용 불편 등의 이유로 수차례 민원이 제기되고서야 ‘파크골프장들이 불법일 수 있겠다’ ‘문제가 크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현재 영남권 이외 지역에 설치된 파크골프장의 불법 조성 여부 등도 조사하고 있다.

환경단체, 생태계 파괴 우려
장마·홍수 자정능력도 감소
환경부·지자체는 서로 네 탓
“노인표 겨냥한 행태” 지적도

■ ‘네 탓’ 속 노인표 의식해 확대

파크골프장은 고령층 수요가 늘면서 급증했다. 대구지역의 경우 파크골프장 25곳 중 10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2020년 이후 들어섰다. 여기에는 불법인 5곳도 포함돼 있다.

환경당국과 지자체들은 서로 ‘책임 미루기’를 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환경당국의 묵인이 파크골프장 확장에 영향을 끼쳤다고 항변한다. 파크골프장 조성에 나설 때 각 환경청이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아 ‘지어도 된다’는 학습효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몇년 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파크골프장이 생겨났지만 (환경 등) 문제가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하천변 관리 주체인 지자체가 민원에 못 이기는 척하며 대규모 파크골프장을 ‘단순 체육시설’로 무분별하게 조성했던 것”이라고 했다. 게이트볼 구장이 파크골프장으로 둔갑한 뒤 면적을 넓히도록 눈감아줬다는 지적이다.

무허가 파크골프장들은 절차를 어기고 무단 조성한 것인 만큼 지자체들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낙동강환경청 관계자는 “지자체장들도 선거 때 파크골프장을 증설한다는 공약을 많이 내걸었지 않냐”고 말했다. 환경당국의 뒤늦은 관리·감독에도 상당수 지자체들은 파크골프장 추가 조성 계획을 바꾸지 않고 있다.

경남도는 시·군과 협력해 올해 6곳에 40억원을 투입하는 등 4년간 240억원을 들여 파크골프장 12개를 추가로 만들 방침이다. 대구시 역시 지난 1월 사업비 82억5000만원을 들여 내년 7월까지 금호강변에 파크골프장 6곳을 신설 또는 확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충남도는 내년까지 30곳을 새로 짓거나 확장하고 대전시는 기존 5곳 외에 3곳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환경·생태 전문가들은 오염 등을 우려한다. 강변은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하천 생태계에서 중요한 곳으로 골프장이 들어서면 야생동물이 살 곳을 잃는다는 것이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은 “파크골프장 조성·유지 과정에서 잔디 관리를 위해 살충제와 제초제 등 다양한 농약이 사용된다. 하류지역 식수원과 농업용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동식물은 서식 면적이 줄어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마나 홍수 시 하천 자정 능력 및 홍수조절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지자체들이 파크골프장 조성에 열을 올리는 것은 노령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적 행태라는 지적도 있다.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은 파크골프장을 ‘노인복지 차원’이라고 말한 홍준표 대구시장과 관련해 “차기 대선 또는 지방선거를 노린 정치적 결정으로 의심된다”면서 “노인을 위한다며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시설 대신 어린이와 청년·장애인 등 (전 세대를 위한) 체육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백경열·김정훈·강정의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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