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은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질환이다. 어지럼증이 반복되거나 얼굴이 창백할 때 사람들은 흔히 ‘빈혈’을 떠올린다. 그런데 빈혈은 발생 원인과 증상이 매우 다양하다. 빈혈 자체가 하나의 질환이지만, 여기에는 더 큰 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출혈성 위장관 질환과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대표적이다. 가벼운 빈혈 증상도 방치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빈혈에 대해 알아봤다.
혈액 속 적혈구 부족할 때 나타나
어지럼증보다 피로감 등 주증상
위장 출혈·만성질환도 빈혈 유발
빈혈은 말 그대로 ‘피가 모자란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빈혈은 피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 게 아니다. 혈액 속 ‘적혈구 수’가 정상보다 적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피는 백혈구·적혈구·혈소판 같은 혈구 세포와 혈장(물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빈혈 증상은 적혈구의 양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때 나타난다. 혈색소 수치를 기준으로 성인 남성은 13g/dL 미만, 성인 여성은 12g/dL 미만이면 빈혈로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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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보다 여성에 더 흔히 발병
어지럼증은 빈혈의 여러 가지 증상 중 하나다. 많은 사람이 어지럼증과 빈혈을 동일하게 여기지만, 사실 어지럼증이 빈혈의 대표 증상은 아니다. 어지럼증이 생겨 막상 혈액검사를 해보면 의외로 정상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빈혈 증상은 ▶피로감 ▶무기력증 ▶안면 창백 ▶빈맥(빠른 심장 박동) ▶호흡곤란 등이 더 흔하게 나타난다. 빈혈의 또 다른 증상으로 손톱과 입술 양옆이 갈라질 수 있다. 철분 결핍이 심할 땐 얼음을 씹어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빈혈이 장기화하면 별다른 이상 증상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서서히 진행되는 빈혈 상황에 몸이 적응해 나타나는 결과다.
특히 빈혈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흔히 나타난다. 가임기 여성의 경우 매달 생리로 인한 만성 출혈로 혈액 손실을 겪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보다 여성의 ‘철 결핍성 빈혈’ 발생 가능성이 훨씬 높다. 특히 30~40대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철분이 더 부족할 수 있다. 자궁근종이 있는 여성이라면 생리의 양이 많아져 철 결핍성 빈혈이 더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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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혈 장기화 땐 증상 거의 없어
폐경기 여성이나 성인 남성에게 철 결핍성 빈혈이 생긴다면 이는 심각한 상태일 수 있다. 생리로 인한 출혈이 없는데도 몸속 어디선가 피가 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빈혈은 위궤양·치핵(치질) 등 위장관 출혈이 문제가 돼 발생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위암과 대장암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위암·대장암 등 위장관에 생기는 암은 점막에 궤양성 병변을 만들고 출혈을 유발해 빈혈을 부른다. 별다른 이유 없이 빈혈 증상이 나타난다면 만성 실혈(혈액 상실)을 의심하고 위·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고혈압·당뇨병·염증성 질환 등 만성질환도 빈혈의 주요 원인 질환으로 꼽힌다. 만성질환이 있을 경우 면역 조절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돼 조혈(造血) 기능에 이상이 생겨 빈혈을 유발한다.
철분제를 복용하면 빈혈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빈혈이 의심된다고 해서 무턱대고 철분제를 복용해선 안 된다. 철 결핍성 빈혈일 경우엔 철분제 보충이 일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외에도 빈혈의 종류는 다양하다. 철 결핍성 빈혈이 아닌데도 철분을 과다 복용하면 변비·소화장애·속쓰림·오심 같은 위장관 내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피를 만드는 영양소는 철분뿐 아니라 비타민B12와 엽산 등이 있다. 철분은 적혈구에서 헤모글로빈과 단단히 결합해 산소·영양분을 나르는 ‘그릇’이 된다. 비타민B12와 엽산은 적혈구와 백혈구의 재료로 쓰인다. 빈혈이 의심된다고 무작정 철분제를 먹기보다 정확한 검사를 통해 빈혈의 원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 빈혈로 오인하기 쉬운 질환
기립성 저혈압
기립성 저혈압을 빈혈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공통으로 나타나는 어지럼증 때문이다. 기립성 저혈압은 일어설 때 혈압이 크게 떨어져 뇌 혈류 공급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질환이다. 일어날 때 본색을 드러낸다. 오랜 시간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가 일어서면 머리가 ‘핑’ 돌면서 균형감각을 잃는 게 특징이다. 누웠을 땐 별다른 증상이 없다. 반면에 빈혈은 눕거나 앉아 있을 때도 어지럼증이 지속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석증
이석증도 어지럼증 때문에 빈혈과 혼동하기 쉽다. ‘귓속의 돌’이라고 불리는 이석은 일종의 칼슘 부스러기다. 이는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귓속 반고리관에 붙어있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석이 제자리를 벗어나 다른 부위로 이동하면 어지럼증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이석증은 고개를 숙이거나 누운 상태에서 돌릴 때 순간적으로 심한 어지럼증이 생긴다. 한쪽으로 누웠을 때 증상이 더 심한 편이다.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1분 정도 가만히 있으면 증상이 사라진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빙글빙글 회전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춘곤증
춘곤증은 흔히 ‘봄철의 불청객’으로 불린다. 춘곤증을 빈혈로 오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로감 때문이다. 온몸이 나른하고 이유 없이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오는 증상이다. 특히 이 시기 빈혈로 인한 피로감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는 환자 중엔 춘곤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춘곤증은 기온이 올라가고 근육이 풀어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운동과 충분한 휴식 등으로 생활습관을 개선했는데도 한 달 이상 피로감이 이어진다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도움말=김양현 고려대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박진희 가천대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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