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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뜨고 지는 ‘핫플’의 운명, 성수 다음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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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소셜미디어에서 성수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핫플, ‘용산 트라이앵글’ 용리단길의 한 음식점 앞으로 21일 시민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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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있는 그 동네를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그룹 코요태의 멤버이자 사진작가인 빽가(백성현)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날 방송에서 “내 손이 닿는 곳마다 ‘핫플’이 됐다”며 가로수길과 경리단길, 연남동에서의 사업 성공담을 전했다. 낮은 건물이 많은가, 임대료가 저렴한가, 근처 공영 주차장이 있는가 등 자신만의 동네 선택 기준도 소개했다.

효창공원을 비롯한 용산구 일대가 들썩이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트렌드 세터들이 ‘대세 핫플’ 성수의 대안으로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효창공원역을 잇는 트라이앵글 지역을 주목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인스타그램에 ‘삼각지’를 검색하면 21만여 개의 해시태그가 뜬다. ‘용리단길’ ‘효창공원 카페’ 등 연관 해시태그의 유입도 적지 않다.

유동인구를 바탕으로 한 상권 지표도 이곳의 인기를 뒷받침한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삼각지역 3번 출구 일대의 점포 수는 전 분기 대비 6.4% 늘었고, 삼각지역 인근의 점포 매출은 41.1%가 증가했다.

‘핫플레이스’는 돈과 사람이 모이는 유행의 바로미터다. <돈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입지의 비밀 로케이션>의 저자 에노모토 아쓰시는 “입지에서 중요한 건 사람이 ‘얼마나 지나다니느냐’가 아니라 ‘왜 지나다니느냐’다”라고 설명한다. 지금 용산을 찾는 이들의 ‘이유’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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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맛과 인테리어로 동남아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용리단길.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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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팅은 나의 몫, 용리단길

‘용리단길 투어’를 위해 오후 반차까지 낸 직장인 허민희씨의 계획은 야무졌다. 저녁 식사를 위해 중식당 ‘꺼거’에 웨이팅(대기 예약)을 걸어두고 독립서점 ‘픽셀 퍼 인치’를 둘러보다가 식사를 마친 뒤 ‘퇴디뵈르 하우스’에 들러 후식으로 크루아상을 먹는 것이었다. 지난한 ‘웨이팅’과 ‘입장 마감’이라는 변수에 모든 계획을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그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머지않아 이곳을 또다시 찾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 ‘핫플’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성수동을 자주 갔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양한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는 새로움을 주지만 동시에 피로감을 안겼고, 프랜차이즈와 다를 바 없는 카페나 식당에도 싫증이 나던 참이었어요. 맛과 멋을 모두 챙길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용리단길이 있더라고요.”

신용산역부터 삼각지역에 이르는 300m 남짓의 용리단길은 ‘혜성처럼’ 등장한 핫플은 아니다. 낡은 주택과 노포가 밀집된 이 골목은 2017년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들어선 후 유동 인구가 늘면서 소규모 맛집 거리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앞서 인기를 끌었던 ‘경리단길’과 마찬가지로 한적한 이면도로에 있는 ‘용리단길’, 즉 한강로2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월세를 내며 개성 있는 메뉴를 담아낼 가능성을 품은 동네였다. 발 빠른 자영업자들의 레이더에 포착된 골목은 서서히 식당과 카페들로 채워지며 ‘트라이앵글 핫플’의 초석을 다졌고, ‘경리단길’의 명성을 이어받아 ‘용리단길’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한때는 성수를 비롯한 다른 ‘핫플’에 밀려 주춤한 암흑기를 보내기도 했다. 인기가 재점화된 것은 팬데믹이 절정에 이른 2021년이다. 베트남 요리 전문점 ‘효뜨’에 이어 캘리포니아 가정식 ‘쌤쌤쌤’, 홍콩식 바비큐를 메인으로 하는 ‘로스트 홍콩’, 일본 다치노미(선술집) 콘셉트의 ‘키보’ 등 이국적인 메뉴를 주력으로 하는 식당들이 해외여행을 갈구하는 이들의 욕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하이브가 사옥을 이전하고 이후 ‘래미안용산더센트럴파크’ ‘용산 푸르지오 써밋’ 등 초고층 아파트의 완공도 ‘용리단길’ 붐을 견인했다. 낮에는 인근 직장인들이, 주말에는 핫플을 찾는 MZ세대들이 지갑을 열며 안정적인 시장이 형성됐다.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허민희 마케터는 “팬데믹 이후 온라인 시장이 확장되며 의식주 모든 분야에서 원하는 것을 클릭 하나로 쉽게 얻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만 소비자들이 움직인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용리단길’을 만난 이들에게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다. 차별성이다. 이곳의 인기 식당들은 현지 메뉴뿐 아니라 현지의 감성을 살리는 데 힘을 싣는다. 현지 문화와 식자재에 대한 이해도 높은 편이다. 쌀국수도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나라별로 세분화돼 있다.

‘인친(인스타그램 친구)’들의 추천으로 이곳을 찾았다는 김국현씨는 “이국적인 거리는 많지만 ‘용리단길’은 동남아시아의 메뉴에 특화돼 있어 단기 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한강로동 일대가 대부분 개발 계획의 제한을 받는 것과 달리 용리단길을 포함한 골목 상권은 신축과 리모델링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가게마다 특성을 살린 인테리어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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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리단길이 이색 식당으로 북새통을 이룬다면 삼각지 상권은 골목골목 자리한 노포들이 주축을 이룬다.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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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와대’ 효과? ‘한식대첩’ 삼각지 내공

길게 늘어선 줄은 삼각지에서도 이어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낮 12시 몽탄에서의 점심을 희망한다면 오전 9시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 글이 있다. 삼각지역에서 처음 발견하는 줄이 곧 몽탄의 대기 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몽탄’은 우대갈비를 대표 메뉴로 내세운 고깃집으로, 웨이팅에 민감하지 않은 ‘맛집’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극악무도의 웨이팅 식당’으로 불리는 삼각지의 유명 식당이다.

오전 11시에 줄을 서 2시간을 기다린 다음 ‘웨이팅’에 성공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는 대학생 유하연씨는 “대기를 위한 대기를 감내해야 하는 공간이지만 인터넷에서 예습한 대로 메뉴를 주문해 먹으면서 성취감이 들었다”고 전했다.

용리단길이 이색 식당으로 북새통을 이룬다면 삼각지 상권은 골목골목 자리한 노포들이 주축을 이룬다. ‘젊은’ 가게들이 모바일 메신저 앱으로 ‘웨이팅’ 번호를 획득한다면 이곳의 노포들은 아날로그의 방식, 줄서기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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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민감한 트렌드 세터들이 ‘대세 핫플’ 성수의 대안으로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효창공원역을 잇는 트라이앵글 지역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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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지는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요식업을 선도할 만큼 경쟁력이 있는 동네는 아니었다. 원대구탕, 한강생태, 명화원, 봉산집, 문배동육칼 등 숨은 맛집은 많았지만 인근 이태원 등과 비교했을 때 ‘조연’에 가까웠다.

긴 무명의 시간을 깬 것은 ‘용와대’ 시대가 펼쳐지면서다. 삼각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박영호씨는 “청와대(대통령실)가 이전하며 즉각적으로 체감한 것은 공실률이다. 상가 계약을 문의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삼각지는 지하철 4호선과 6호선이 만나 유동인구가 많고 곳곳에 숨겨진 맛집들이 포진해 있지만 사람들을 머물게 하는 힘은 부족했던 동네였다”면서 “그런데 이전 이슈가 터지면서 대통령실 관계자들과 일반인들의 방문 빈도 또한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폭됐다”고 덧붙였다.

쏟아진 관심은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내공을 보여주기에 좋은 타이밍으로 작용했다. 연극무대에서 탄탄하게 기본기를 다진 베테랑 배우처럼 삼각지는 남녀노소 좋아하는 주연으로 성장했다. 대구탕 골목에서 만난 직장인 박주혁씨 역시 “엔데믹 후 팀 점심을 먹을 일이 많아졌다. 한식은 부장님도, 신입사원도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아 자주 찾는다”며 “예전에는 몰랐는데 대충 차린 것 같은 반찬들이지만 한 그릇을 싹싹 긁어먹고도 ‘더’를 외치게 되는 식당들이 많더라”고 말했다.

예스러운 철문과 세월을 고스란히 반영한 식기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퍼진 복고 열풍과 맞물려 평균 손님 연령대를 낮추기도 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용리단길과 다르게 마치 한식대첩을 즐기듯 ‘맛집 도장깨기’를 하는 재미 역시 경험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흔든다.

패션·유통 업계도 포화상태에 가까운 성수의 대안으로 삼각지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9CM과 메이커스마크 등의 브랜드가 삼각지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최근에는 고급 와인바가 빠른 속도로 영역을 확장하는 모양새다. 연일 만석일 정도로 핫한 처그를 비롯해 하리, 르굴, 클로스 등이 대표적이다.

퇴근 후 와인바 ‘피보’를 즐겨 찾는다는 20대 초반의 프리랜서 이민정씨는 “삼각지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어른들과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를 모두 포섭하는 공간이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오래된 식당과 수준급의 셰프들이 패기를 갖고 모험을 하는 공간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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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의 마지막 꼭짓점인 효창공원역 일대는 도심 속 힐링 데이트 코스로 소리 없이 급부상 중이다. 카페 홀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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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시장 품은 효창공원역 카페 거리

이민혁·조성희씨 커플은 최근 아지트였던 ‘연트럴파크’를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 이씨는 “도심에서 이렇게 고요한 동네가 또 있을까.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트라이앵글의 마지막 꼭짓점인 효창공원역 일대는 도심 속 힐링 데이트 코스로 소리 없이 급부상 중이다.

동시에 이 일대는 커피 맛에 예민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기도 하다. 비건카페 ‘홀트’, 쿠키맛집 ‘위베이크러브’, 커피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헬카페 보테가’, 간판은 없지만 멋 부리지 않아 더 좋은 ‘브랑쿠시’까지 현재는 띄엄띄엄 자리한 카페와 브런치 매장이 전부이지만 이곳의 부동산 관계자들은 “알음알음 물밑 작업이 오가는 중”이라고 입을 모은다.

연남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이혁씨 또한 2호점 오픈 장소로 효창공원역 일대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해 입지가 좋고 대중교통으로도 오기 편한 곳, 삼각지와 용리단길의 낙수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골목의 전쟁> 저자 김영준 작가의 분석도 비슷하다. 김 작가는 “돌이켜보면 핫플의 축은 언제나 이동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 축이 기존의 핫플에서 크게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작가는 “기존의 핫플들은 저렴한 월세가 1순위 조건이었다. 그런데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과 직면하다 보니 대부분 소상공인이 유행이 지나가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특히 효창공원 6번 출구 인근을 지칭하는 ‘용마루길’은 지난달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3년간 최대 30억원이라는 종잣돈도 확보했다. 용산구는 골목상권뿐 아니라 지역 예술인과 협업해 특색있는 상권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다각도로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용할 것만 같은 이 동네에도 반전은 있다. ‘원조’라는 글자들이 신뢰를 더하는 용문시장이 길 건너에 자리잡고 있다. 분식과 햄버거의 묘한 조합을 맛볼 수 있는 맛나분식부터 뜻밖의 트렌디함을 마주할 수 있는 간장다이닝까지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

슬슬 벚꽃 소식이 들려오는 이번 주말, 떠오르는 ‘핫플’ 찾기에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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