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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한국 결단한 미래로 가는 문, 日 진정성 있는 호응으로 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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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평화재단 외교안보 좌담회]한일 정상회담과 한반도

한일 정상화 길, ‘절반의 성공’… 한중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져야

尹, 과거사 벗어난 인식 대전환… 아베였으면 전향적 대답 했을 수도

‘현실적 차선책’ 제3자 변제안, 축소지향적 갈등 관리 위한 결단

동아일보

《한일 관계, 미래의 문 열리나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 일본, 과거와 역사의 굴레를 벗고 미래로 가자’는 한국 정부의 선제적 결단에 일본은 얼마나 진정성 있는 조치로 호응할 것인가. 동아일보 산하 화정평화재단은 외교안보 좌담회를 열어 한일 정상회담의 의미를 점검했다.》

동아일보

동아일보 산하 화정평화재단이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외교안보 좌담회에서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전 주인도대사),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사회),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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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16일 정상회담으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한일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동아일보 산하 화정평화재단(이사장 남시욱)은 한일 정상회담의 의미와 한반도 안보를 주제로 2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문가 좌담회를 가졌다. 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전 주인도대사),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참석했다. 사회는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이 맡았다.

● ‘과거 딛고 미래로’

구자룡 소장=한일 정상회담 후 윤 대통령은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의 매우 큰 발자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굴욕외교’라며 반발하고 식민지배에 대한 명확한 사과가 없는 일본에 비판적인 여론도 적지 않다. 이번 정상회담이 2012년 징용 판결로 더욱 꼬이기 시작한 한일 관계의 변곡점이 되기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신봉길 협회장=문재인 정부가 신남방 정책이나 아세안, 인도 등에 공을 기울인 것은 잘했고 성과도 있었다. 아쉬운 점은 한일 관계를 잘못 다룬 것이다. 이제 한일 관계가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려 하지만 동북아 협력 차원에서는 ‘절반의 성공’이다. 2019년 중국 청두(成都)를 끝으로 안 열리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담 국면을 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창수 센터장=윤 대통령은 선제적 결단을 통해 과거를 넘어서는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에 방점을 두고 있다. 양국이 회담을 계기로 ‘대화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자’는 인식을 같이했다. 인도태평양, 경제 안보, 북한 핵문제 공동 대응을 위해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것이 큰 성과다.

박철희 교수=일본은 문재인 정권 때 한국은 못 믿겠다. 도저히 상대 못 하겠다는 분위기였는데,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이번 ‘제3자 변제안’ 발표 이후 일본에서는 한일 관계가 이제 풀려 나가겠다는 안도감이 생겨난 반면, ‘한국에서 저렇게까지 결단했는데 일본도 뭘 해야겠다’고 부담감을 느끼는 분위기도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에도 노무현 정권 중반부터 지금까지 한일 관계는 사실상 ‘흔들리는 20년’이었다. 양국 관계는 갈등이 기본이고 협력은 가끔 있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협력의 틀을 다시 짜는 출발점이었다.

구=회담 후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올라간 반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떨어졌다.

진=산케이신문이 회담 후 ‘완승했다’는 사설을 실었는데 곧바로 신문사 내부에서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고 한다. 한일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보는 것이다.

● ‘제3자 변제안’이라는 고육책과 결단

구=한일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것이 제3자 변제안이지만 제일 논란이 되고 있다.

진=제3자 변제안은 이낙연 총리 방일 때부터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고육책이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대법원 판결 사이에서 칼날같이 좁은 공간에서 선택을 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이 방법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박=제3자 변제안은 전후 한일 관계의 근간인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지도 않으려는 것이다. 청구권 협정의 여덟 개 항목에는 징용 문제도 들어 있었다. 청구권 협정을 통해 징용이 해결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1975년 박정희 정권과 2007년 노무현 정권 당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대규모 보상을 했다. 그런데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위자료 형식의 개별 피해 청구권을 인정해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야 할 법정 채권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권리를 실효적으로 구제해 주는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제3자 변제였다.

일본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있지만 제3자 변제는 면책적 채무 인수가 아니다. 책임을 면제해 주고 대신 갚아주는 게 아니다. ‘일본 기업도 책임이 있지만 제3자인 재단이 우선 변제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상권이 생긴다. 구상권 행사는 갚아준 사람 마음이다. 그 부분이 정치의 영역이다. 윤 대통령이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한 것이 정치적 결단이다. 제3자 변제안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최선책보다 현실성 있는 차선책을 택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먼저 피해자를 구제해 주고 일본의 호응 조치를 기대한다. 호응 조치가 없으면 한국 정부가 아닌 일본에 화살을 돌려야 한다.

신=국제법과 국내법이 충돌하면 국제법이 우선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반 원칙이다. 다만 지금은 1965년 기본조약에 대한 해석의 문제인 것 같다. 국제법 원칙을 위반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본조약의 해석에 대해 지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 일본도 적극적인 호응 있어야

구=윤 대통령의 통 큰 결단에 비해 일본의 호응은 미흡했다는 지적이 한일 양국 모두에서 나온다.

박=한일 관계에 대해 4가지 선택이 있는데 인식의 차이가 있다. △일본을 적대와 대립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 협력 파트너로 인식할 것인지 △반일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갈등을 확대할 것인지, 갈등을 축소지향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인지 △피해자 구제 등 문제를 방치할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인지 △사법부 판결을 최후 결정이라며 그냥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국정 책임자로서 정치 외교의 영역을 열어 놓을 것인지 등이다. 물론 윤 정부는 모두 후자를 선택하고 있다.

진=한국 국력이 커졌는데 여전히 과거사 문제에 매달려 있을 것인가, 여전히 피해자 의식만으로 한일 관계를 생각할 것인가. 윤 대통령은 이런 인식에서 벗어남으로써 한일 관계의 대전환을 가져오고자 했다. 이제 일본이 화답해야 한다. 기시다 총리가 사죄와 반성을 명확하게 하면서 통 크게 나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오히려 아베 신조 총리였다면 보다 전향적인 대답을 했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베는 오너 비슷한 우파의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본인 책임으로 결단을 했을 수 있는데 우유부단한 기시다는 못했다.

● 한일 관계의 아킬레스건 ‘사죄’

구=기시다 총리가 식민 지배에 대해 명확한 사죄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이 과거 50차례 이상,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0차례 넘게 사과했다고 했다.

박=기시다 총리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얘기했으면 가장 좋았지만 다음 달 지방선거와 보궐선거를 앞두고 주저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진=일본 언론들도 기시다 총리가 빨리 털고 가는 것이 나았다는 지적을 한다. 그러지 못해 오히려 부담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신=회담 후 기자들이 김대중-오부치 선언 때 오부치의 사과 문구를 읽어 달라고 했는데 안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할 때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낸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아베가 2차 대전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표시하는 것을 추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 여론과 선거를 의식하는 국내 정치적 요인 때문일 것이다.

박=
이제 한일 언론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오부치의 사과 문구가 나오는지만 볼 것이다. 기시다 총리에게 조언한다면 꼭 그 말이 아니어도 된다. 식민 지배에 얼마만큼 미안하게 생각하고 한국 사람들에게 끼친 피해와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 ‘특별법’으로 국회도 나서야

구=윤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서둘러 제3자 변제안을 내면서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는 피해자들과의 소통 등 국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결국 진정성을 가지고 피해자들을 계속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도 방법이다.

박=더 많은 대화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면서 최대한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피해자들 입장도 다양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리 구제를 원하는 분들한테는 권리 구제를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

진=법적 문제 해결을 위해 특별법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모든 피해자들을 대법원 판결 방식으로 보상하기에는 국력이 너무 소모된다. 국회가 ‘제2의 문희상안’을 마련하든지 해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박=특별법 논의에 세 가지 기준은 있어야 한다. 피해자를 객관적으로 증빙하는 객관성, 과거 보상받은 사람과의 형평성, 그리고 사회적 공정성이다.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은 분들에 대한 보훈과 징용 피해자의 보상이 사회적 정의에 부합해야 한다. 보훈과 보상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보훈도 제대로 못 해주고 있는 나라다.

● 한일, 이제는 한중일 협력으로

구=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일부 국가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소그룹을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논평했다. 한일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신=국제정치학자들은 동북아 지역 협력이 어려운 3가지 특징을 꼽는다.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점, 미국의 영향력이 일본 한국 등을 끌어당겨 동북아에서 빠져나가는 원심력이 작용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중국이라는 존재가 이웃 국가와 균형을 맞추기에는 너무 크다는 점이다. 동북아 지역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가장 긴장이 높은 곳이 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커지는 데 한일 간 분열 지속은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 한미일 안보협력은 동북아 긴장 완화에도 중요하다.

박=한국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 강화와 정상화로 대중국 외교의 부담도 줄었다. 미일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에 접근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더욱이 한중일 교류의 장이 마련되면 자연스럽게 한중 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신=한일 정상회담 이후 4월에는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 5월에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한미일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으로서는 한미일 관계 구축과 강화에 이은 수순은 한중일 관계 복원이다. 그 계기는 한국에 협력사무국이 설치되어 있는 3국 정상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상 중국에서는 총리가 참석하는데 순서상 한국이 개최하는 차기 정상회담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참여해 3국 관계 회복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검토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 ‘안보 보험’, 한미일 안보협력

구=한일 정상회담 전후로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미사일 실험을 하더니 800m 상공에서 폭발하는 핵폭탄 모의실험까지 했다. 한일, 한미일 안보협력이 왜 중요한지를 확인해 주는 것 같다.

진=미국과 일본 간 군사적 일체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일 협력 강화는 안보 보험을 확대하는 의미가 있다. 안보 보험을 더 확대하기 위해서는 공동 훈련을 통해서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어떤 역할을 함으로써 유사 사태 때 억제 능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미일 협력이라는 말을 터부시했다. 한미일 군사협력이 신냉전을 가져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미일 협력은 유사 상태 시 우리의 억제력을 높여주는 ‘안보 보험’을 확대하는 것이다.

구=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해 중국은 ‘동아시아판 나토’를 결성하려는 것이냐고 경계를 한다.

박=안보협력과 군사동맹은 다르다. 안보는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것이다. 북한의 실질적인 위협이 있으니까 ‘방어적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다. 안보협력은 위협에 대한 대응 메커니즘을 좀 더 촘촘하게 짜자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커지고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팽창적 공세적으로 힘을 사용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 국제정치학 용어로 ‘자조(自助·self help)’만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동맹국, 우호국과 팀을 짜야 한다.

신=한일 관계 개선의 방향은 옳지만 중국을 봉쇄 고립시키거나 압력과 압박을 가하는 식으로 전개돼서는 안 된다.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압박을 당하면 불만을 대외적 팽창 등으로 표출할 수 있다. 중국이 포위하려 한다고 포위될 나라도 아니다. 호주 코앞 솔로몬 제도에 해군기지 사용권을 확보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화해를 주도하는가 하면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을 만나 반미 공동 전선을 펴고 있다. 국내에서는 반중 감정이 고조되면서 중국 ‘배싱(bashing·때리기)’이 심하다. 중국 외교관 만나는 것도 신경을 쓴다고 한다.

정리=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정리=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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