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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안상미 기자의 와이(Why) 와인]<190>SVB 파산에 와인업계가 '발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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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프리미엄 와인 부문은 작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미국의 와인 소비는 전체적으로 2년째 감소세를 기록했다. 앞으로 와인 판매는 업계가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에게 어떻게 다가갈 지에 달려 있다."(SVB 미국 와인산업 현황 보고서 2023)

미국 와인산업의 위기를 논했지만 정작 자신의 위기는 보지 못했다. 파산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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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의 초고속 파산선언에 화들짝 놀란 곳은 IT 스타트업 뿐만이 아니었다. SVB는 무려 30년 가까이 나파밸리, 아니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의 절대적인 자금줄이기도 했다.

대응도 빠르지 못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퍼진 SVB 위기설에 스타트업들은 재빨리 예금 인출에 나섰지만 와인 메이커들은 SVB 신용카드와 수표로는 결제가 자꾸 거절되고, 은행 앱에 로그인조차 되지 않게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유통업체들에게 와인 대금을 입금하지 말라고 전화를 돌리고 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SVB가 와인 사업부를 만든 것은 지난 1994년이다. 와인 산업의 잠재력을 알아본 창업자 롭 맥밀런 덕분이다. 와이너리들이 기존 은행에서는 제대로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공략해 대출은 물론 시장 조사를 기반으로 한 컨설턴트의 역할까지 자처했다.

사실 와인 사업이라는게 시간과 돈, 그리고 기다림이 필수다. 포도나무가 쓸 만해질 때까지 몇 년, 와인을 만들어 놓고도 숙성하는데 또 몇 년이다. 시간만으로도 돈을 까먹고 있는데 오크통 같은 것은 또 얼마나 비싼지. 이렇게 돈과 시간을 들이고도 와인의 맛이 인정을 받을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실패한다면 이 지난한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보수적이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미국 은행들이 이런 사업에 쉽게 돈을 빌려줄 리가 없었다.

SVB는 달랐다. 대출을 요청한 곳이 있으면 와이너리에 함께 앉아 와인을 시음했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시장 조사 내용을 공유하고, 장단기적으로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좋은 방안이 무엇일지 같이 고민했다.

결이 다른 접근에 와이너리들은 SVB로 몰려들었다. SVB와 거래하는 와이너리만 400여 곳에 달했으며, 이들이 그간 빌린 돈은 40억 달러(한화 약 5조원)다. 작년 말 기준으로 남아있는 대출은 12억 달러다. 미국 와인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파리의 심판'에서 1위를 차지한 샤토 몬텔레나도 SVB의 도움을 받았으며, 많은 캘리포니아 유수의 와이너리들이 SVB의 고객이다.

맥밀런은 "우리가 와이너리에 대출을 해주고 손실을 입은 금액은 지난 30년을 모두 통틀어도 400만 달러(한화 약 50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가 특별히 보수적으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와인 사업의 리스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고객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인내심도 충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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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의 와인사업부가 매년 내놓는 '미국 와인산업 현황 보고서'는 업계에서도 정확한 분석과 통찰로 정평이 나있었다. 포도 작황은 물론 와인생산량, 생산 원가 분석, 와인소비 트렌드 등까지 산업 전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1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 하나만 있으면 누구든 미국 와인산업을 논할 수 있었지만 2024년 버전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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