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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임의진의 시골편지] 사탕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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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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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도중에 만난 가이드 청년은 베트남 펑차우가 고향이랬다. 축구왕이 될 운명 같았는데, 뻥~ 차우, 귀여운 허풍쟁이. 집안이 대대로 사탕 가게를 한대서 꼭 오래. 사진을 보니 사탕은 몇 봉지뿐이고 잡화점.

커피잔에 빠져 죽던 파리가 ‘아 정말로 단맛 쓴맛 다 보고 가네’ 하듯이 골고루 맛을 보고 살았으면 싶어라. 인생 쓴맛 말고 사탕의 단맛도 말이야.

작가이자 수의사 폴 빌리어드가 쓴 어린 시절 얘기, <Growing Pains>. 성장통이라 번역할 수 있을 텐데 국내판은 ‘위그든 씨의 사탕 가게’라 했더군. 책은 시애틀 대학가 정류장 길가에 있던 사탕 가게 얘기부터 술술. 그곳을 엄마 따라 가곤 했던 꼬마, 혼자서 집 밖으로 첫걸음을 떼게 만든 것도 바로 그 사탕 가게. 박하사탕, 눈깔사탕, 초콜릿 캔디바, 코코넛 사탕, 흑설탕과 땅콩 가루를 버무린 땅콩 과자에 홀린 아이는 눈이 뒤집혔다. 돈이란 게 뭔지도 몰랐던 꼬마는 체리씨 여섯 개를 호주머니에 담고선 길을 나선다. 그러고선 위그든 할아버지에게 체리씨를 돈처럼 건네며 사탕을 내놓으라 거래를 시도. “모자라나욥?” “아니다. 오히려 돈이 남는걸. 옜다 거스름돈.” 1센트 동전 두 개와 사탕 봉지를 쥐여주신 할아버지. 이 일로 엄마에게 혼났지만, 돈에 관해선 두 분 다 말씀이 없었다. 세상은 그런 할아버지의 후덕함 때문에 굴러가는 법.

날마다 짝을 새로 고르고 키재기를 해야 하는 젓가락은 얼마나 고달플까. 쉬이 갈라서고 사라져 없는 세상에서 그분은 항상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어. 이기적이게도 여행자인 나는 그런 가만한 사람을 좋아하고 찾아다닌다. 수선화, 산수유, 개나리까지 바람결 따라 노란 물결이렷다. 시골길 어디 점방에 노란 모자를 눌러쓴 유치원 아이와 노랑나비가 기웃거리길. 또 펑차우 그 친구 집에도 가고 싶어라. 월 100만원 벌이로는 오지 말고, 내가 사탕 사먹으러 갈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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