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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혈세로 키운 ‘한돈’ 브랜드…정부 “비계는 우리 알 바 아니다”? [3·3 비계데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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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비계 비중’ 규정없어 벌어진 삼겹살 사태

정부, 막대한 예산투입에도 책임 떠넘기기 급급

한돈 20주년에 불거진 ‘비계 덩어리 삼겹살’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도 정작 정책 당국은 “기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 채 모르쇠로 일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뒤늦게 “제품 선택 시 필요한 정보 제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혈세로 키운 도드람 등 유명 브랜드 한돈업체들이 비계 투성이 삼겹살을 교묘히 밑에 숨겨서 비싸게 파는(경향신문 3월 17일자 15면 보도 ‘한돈 상표의 배신, 품질차이 없고 가격만 비싸’) 기만행위가 끊이지 않자, 소비자는 정부가 나서주길 요구하지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해서다.

22일 유명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삼겹살의 고기와 비계 비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는 소비자들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농축산물로 소비자 우롱하고 사기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쓰레기 비계 덩어리로 국민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정부는 도대체 뭐하나” “정부가 나서서 소비자 기만하는 상술을 없애달라” “한돈을 돈 받고 팔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라”는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한 당국은 “소관 부처가 아니다”며 “고기와 비계 비중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고, 비계도 삼겹살인 만큼 과지방 상품을 팔았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는 없다”며 뒷짐지는 모습이다.

경향신문

도드람 한돈이 판매한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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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 도축을 비롯해 등급 판정 등 축산물 품질 평가와 관련한 주무 부처는 농식품부다.

농식품부는 2003년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사육 농가가 어려움을 겪자 ‘도드람’ ‘선진포크’ ‘포크밸리’ 등 브랜드 한돈 육성을 위해 20년째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한돈 자조금’에 53억5000만원, 시민단체 ‘소비자 시민모임’의 우수 브랜드 인증 사업 등에 2억5000만원 등을 책정한 상태다. 브랜드 한돈에만 56억원의 국민 혈세를 쓰는 만큼 농식품부가 비계 덩어리 삼겹살과 가격담합 의혹 등 관리 감독과 책임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원래 없는 부위인데 만들어 파는 ‘돈마호크’도 육가공 영업 기술이지 않나. 비계 삼겹살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며 “소관부처가 아니니 축산물 위생관리법이 적용되는 식약처에 문의하라”고 밝혔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축산법 35조에 따라 한돈 도축부터 등급판정 등 모든 임무와 역할은 농식품부에 있다”며 “상품이 변질되거나 먹거리 안전 문제가 아닌 만큼 소관부처는 농식품부”라고 되받아쳤다.

농식품부 “식약처에 책임 있다”
식약처 “소관부처는 농식품부”
공정위 “불매운동, 소비자가 바꿔라”
소비자원 “불만 많아야 조사할 수 있어”


공정거래위원회도 비계 덩어리 삼겹살 사태와 관련해 “업무 관련성이 없고, 주무 부처가 아니다”고 밝혔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는 소비자 정책국 산하에 소비자안전정보과와 소비자정책과가 있다. 공정위 측은 “삼겹살을 목살도 아니고 삼겹살(비계 포함)이라고 팔았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허위표시도 아니어서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당국자는 “비계가 삼겹살이 아니라는(고기와 비계 비중이 일정해야 한다는) 법이 없지 않느냐”면서 “소비자의 선택인 만큼 해법이라면 (불매운동으로)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은 “불만 접수가 많으면 조사해볼 수 있겠지만 보편적인 문제가 아니다”며 “삼겹살 비계가 얼마 이상이면 안 된다는 기준이 없고 소관 부처도 아니다”고 말했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어려운 한돈 농가를 돕기 위해 20년째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지만 돼지고기를 가공·포장하는 브랜드 돈육업체만 살찌우는 게 사실”이라며 “브랜드 한돈업체의 요구대로 품질과 가격 모두 결정되는 만큼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식품학회 관계자는 “브랜드 한돈이라고 프리미엄 상품도 아니고, 등급 표시기준도 없는 데다, 부위별 지방분포율도 한우처럼 세분화 되어 있지 않다”며 “정부는 삼겹살 고기와 비계 비중에 대한 기준안과 품질 관리대책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비계 덩어리 삼겹살 사태와 관련, 한돈자조금 측은 “매년 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고 있지만 방송광고 등 한돈 홍보와 연구사업 등에 쓰고 있다”며 “문제의 한돈 업체에는 주의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했다. 이어 “(가격 담합 의혹 관련) 브랜드마다 노하우와 관리비용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돼지고기보다 비싼 것”이라며 “브랜드 한돈의 과지방 문제는 물량이 부족해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한돈 우수브랜드 인증 사업을 맡고 있는 소비자시민모임 측도 “삼겹살 고기와 비계 기준은 정책적인 부분이라 (소시모가) 관여하기 곤란하다”며 “향후 우수 브랜드 평가점수에 추가로 반영할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부처간 ‘핑퐁’ 논란이 일자 양돈업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이날 저녁 보도자료를 내 “과지방 삼겹살 판매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돼지고기 가공·유통업체, 브랜드 업체 등과 함께 품질 관리를 강화하겠다”며 “식약처, 소비자단체, 축산물품질평가원 등과 협의해 삼겹살 지방함량 표시 권고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최근 유명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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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명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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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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