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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물가와 GDP

"사람 전멸" 암흑 덮친 거리…불황 비웃던 이 업계마저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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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시민들이 서울 시내의 한 시장 내 식당가 앞에 설치된 은행 현금인출기(ATM)를 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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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4시쯤 서울 중구 북창동에 있는 한 킹크랩 식당. 식당으로 들어서자 주인 김모(53)씨 부부가 재료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김씨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웬만한 일은 가족이 동원된다”며 “요새는 주로 동남아에 온 외국인 관광객이 주고객”이라고 말을 꺼냈다. 예전엔 근처 직장인들이 회식하러 많이 왔는데, 킹크랩은 객단가가 비싸다 보니 고물가 시대엔 인기가 떨어졌다면서다.

실제로 이곳은 건물 1~4층을 통째로 썼는데, 지금은 2층도 못 채우는 날이 잦다고 한다. 김씨는 “여기서만 13년 장사했는데 지금은 가게를 접어야 하나 고민 중”이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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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상점에 폐업 안내문이 붙여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민간 소비를 나타내는 2023년 1월 소매판매액지수는 103.9로 2020년 12월(101.0) 이후 가장 낮다. 고금리·고물가에 고용둔화까지 겹치며 실질 구매력이 약해진 영향으로 소비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와 유사한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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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36)씨도 요새 손님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졌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이씨는 “주택가 카페여서 음료와 디저트 매출 비중이 5대 5인데 요즘은 디저트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며 “디저트는 어떻게 보면 사치재여서 금리가 오를수록 소비를 줄이는 듯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IMF 때보다 더 힘들어”



경기 불황에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이 겹치고, 최근 미국·유럽발 은행 도산 사태가 번지자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인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소비 주체인 기업과 가계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면서다.

현장에선 소비 둔화를 ‘하루가 다르게 절감하고 있다’고 전한다. 서울 금천구에서 여성 전용 사우나를 운영하는 이모(63)씨는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매주 월요일이면 손님이 50명쯤 왔는데 오늘은 30명도 안 된다. 가스비는 그새 250만→400만원으로 급등했다”며 “코로나19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제주시에서 가구점을 하는 강정래(73)씨도 “가구거리는 암흑 거리”라고 표현했다. 손님 한 명 없을 때가 많아 “거의 전멸”이라면서다. 삼성전자 대리점을 25년째 운영한다는 류근배(59)씨도 “지난해보다 매출이 20% 가까이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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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고금리와 대출 부담, 공공 요금 상승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 지난 12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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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라던 지난해보다 폐업 더 느는 추세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소상공인 10명 중 6명 이상(63.4%)은 “지난해보다 빚이 늘었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78%)은 “매출 하락” 때문이었다. 이달 9~14일 소상공인 143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다.

가게 문을 닫는 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1~2월 노란우산공제 폐업공제금 지급 건수는 2만83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4942건보다 39% 늘었다.〈그래픽 참조〉 지급 금액도 2523억원으로 전년(1602억원)보다 57% 급증했다. 노란우산공제는 자영업자나 소기업인 등이 폐업할 때 퇴직금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공제 제도다. 지난해 전체 폐업 공제금 지급액이 9682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는데, 올 초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폐업이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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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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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 1월 소매판매액지수는 103.9로 전달보다 2.1% 떨어졌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매판매액지수는 개인·소비용 상품을 판매하는 2700개 기업의 판매액을 조사한 결과로, 2020년을 기준 시점으로 100에서 시작한다. 지난해 11월(-2.1%), 12월(-0.2%)에 이어 3개월 연속으로 쪼그라들었다. 음식료품(-1.9%)이나 의복(-5%) 등이 모두 줄었다. 코로나19 기간보다 지갑을 더 닫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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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명품 성장세도 한풀 꺾여…소비 여력 분산



그동안 ‘나홀로 휘파람’을 불었던 명품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 조짐이다. 매출 성장세가 둔화 추세여서다. 올해 1~2월 롯데와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3사의 명품 매출 신장률은 각각 5%, 5.8%, 5.3%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각각 35%, 20.8%, 47.8%였던 점을 고려하면 성장 폭이 크게 꺾였다. 특히 지난해 주요 명품 업체들이 줄줄이 가격을 인상했던 사실에 비춰보면 실제 매출이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가구·인테리어 등 리빙 상품군은 ‘마이너스’를 찍었다. 롯데·현대백화점의 올해 리빙 매출 신장률은 각각 –5%, –3.9%였다. 신세계는 2.1% 성장에 그쳤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명품과 리빙 매출이 주춤한 것은 경기 침체로 고가품 소비가 타격을 받은 데다 해외 여행이 재개되면서 남은 소비 여력마저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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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한 시민이 서울 도심 백화점에 설치된 샤넬 광고판을 지나고 있다. 명품 브랜드 샤넬은 주요 핸드백 가격을 최대 6% 인상하는 등 올해 첫 가격 인상에 나섰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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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소비 진작을 위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한동안 소비를 줄일 것”이라며 “지역 축제나 할인 기획전 등 소비자 발걸음을 유도하는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부진으로 자산 가치가 하락하고, 금리가 올라가면서 소비 기회비용이 증가하니 중산층·고소득층까지 지갑을 닫는다”며 “자산 가치 하락 속도를 늦추고,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일현·최선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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