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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규성의 전원에산다] '더치페이' 문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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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며칠전 친구 둘과 만나 한참동안 얘기를 풀었다. 처음엔 그저그런, 아주 일상적인 얘기중에 친구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온라인에 등장한 '집들이'에 대한 얘기다. 친구들과 만나기전 뉴스를 접하고 의아하기는 했다. 내용은 그랬다. 직장동료 여럿이 갓 이사한 동료 집에 초대받아 선물을 사 들고 놀러갔다. 동료들은 집들이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 이야기를 했고 집주인이 음식과 술을 주문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당일 먹게 되는 음식값, 집주인과 초대받은 사람은 음식값을 더치페이하기로 했다. 막상 그렇게 하고보니 초대받은 사람은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누리꾼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집들이 선물도 더치페이하자고 해라" 등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도 한참동안 설전이 오갔다. 중년을 지나가고 있는 우리들로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맞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있다. 요즈음 사라진 것이 집들이다. 신혼을 시작하면서 누구나 당연히 집들이를 하고 아이들 돌잔치도 했다. 그런날이면 아내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손님치레에 고역을 치렀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우리에게 집들이라는 것이 사라져갔다. 그런 건 아예 찾아볼 수 없는 때가 온 것이다. 우린 "더치페이가 어떠니하는 것은 차치하고 집들이라는 걸 하는 너희들이 부럽다"는 것으로 결론났다. 세상살이가 바쁘고 동료들과는 파편화된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 집들이하자고 집에 초대한 것만으로도 점수를 더 주자는 것이었다. 얘기하다보니 애초 들었던 생각과는 꽤 달라진 셈이다.

살면서 우리는 대체로 더치페이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더치페이가 일상이라고 한다. 우리도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더치페이는 잘 하지 않는다. 밥먹자고 부르면 부른 사람이 내는 편이다. 더치페이란 2명 이상이 모일 때, 그 비용을 한 사람이 한꺼번에 계산하지 않고 n분의 1로 돈을 치르는 방식이다. 이것 때문에 갈등도 있다는 얘기가 없지는 않다. 문화가 달라지고 달라진 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누리꾼들의 분분한 의견도 한참동안 진행될 듯 하다. 더치페이를 도와주는 앱이 많으니 달라지는 문화에 따라 기술도 발전해 여전히 신기할 따름이다.

예전에 나는 더치페이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이 얘길 들으면 젊은이라도 경악할 듯 하다. 그리고 그건 아니라고 하지 않을까. 20여년 전 일본 도쿄 출장길에서다. 저녁무렵 우리 일행은 고기를 구워먹는 집에 들렀다. 옆자리에는 우리보다 너댓살 정도 적어보이는 일본인 넷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린 내내 옆자리로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와는 불판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저 평평한 불판 대신 옆자리는 네 구간으로 구분된 불판을 쓰고 있었다. 각 구간에 굽는 고기도 달랐다. 시켜놓은 술, 음료도 다르고 나중에 계산서도 각자에게 주어졌다.

거기서 들은 얘기로는 일본에는 더치페이가 아주 일상이어서 식당에서도 한 자리에서 불판을 같이 쓰지만 주문음식이 다르고 계산도 각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서로다른 구간으로 절대 젓가락이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당시 더치페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눈으로 실제 목격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두고 불판까지 구간을 나눌 정도로 철저한 일본인의 더치페이 정신이라고 해야 될까.

암튼 달라지는 세상을 새삼 실감한다. 우리도 이런 일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걸 다른 이들도 알았으면 한다. 아직 어떻게 적응해야할 지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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