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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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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핀란드 나토로 떠민 셈”…핀란드 외교차관보 방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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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이웃 침략하고 전쟁범죄 저질러”

“핀란드 나토 가입 늦춰 튀르키예 헝가리가 얻을 이득 없어”

“높은 성평등 수준 비결?…인구 50% 배제할 이유 없어”

“男 육아휴직…휴가 주는게 아닌 ‘양육 책임’ 부과하는 것”

동아일보

15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방한 중인 카이 사우어 핀란드 외교안보정책 차관보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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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핀란드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도록 떠밀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오랫동안 중립국 지위를 고수했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 가입을 선언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15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난 카이 사우어 핀란드 외교안보정책 차관보(56)는 “핀란드는 침공 후 러시아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NATO에 가입 신청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1995년 핀란드 외교부에서 근무를 시작한 사우어 차관보는 2014~2019년 유엔 주재 핀란드 대사를 역임한 뒤 2019년 차관보로 임명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핀란드가 중립국 위치를 포기하고 나토에 가입을 신청한 것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나토에 가입 신청을 한 이유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단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이 사건 이후 핀란드는 자국의 안보 환경 변화에 대해 깊게 분석하고 논의한 결과 나토에 가입하는게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러시아가 우리를 나토에 가입하도록 떠밀었다.

이밖에도 2021년 말 러시아가 서방에 나토의 추가 확장 중단과 러시아 인접지로의 공격 무기 배치를 금지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 역시 핀란드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았다. 핀란드는 모든 국가가 스스로 안보정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정치권 또는 국민들이 느끼는 안보위협이 어느 정도인지?

“현재 직접적인 위협은 없다. 하지만 핀란드는 침공 후 러시아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우리는 접경국인 러시아가 이웃 나라를 침략하고, 그곳에서 민간인 학살이나 강간 등 여러 전쟁범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실제로 나토 가입 논의 초반에만 해도 25~30%대였던 국민 찬성여론은 개전 이후 80%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핀란드 의회 역시 전체 의원 200명 중 188명(94%)의 압도적 찬성으로 나토 가입안을 결의했다. 이처럼 국민이 나토 가입을 원했던 것이 나토 가입 신청의 결정적인 요소였다.”

―나토에 가입하려면 30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튀르키예(터키)와 헝가리의 동의만 남겨둔 상태다. 함께 가입을 신청했던 스웨덴보다 핀란드가 먼저 가입할 거라는 예측도 크다. 이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지?

“일단 핀란드는 스웨덴과의 공동 가입을 선호한다. 양국 모두 가입을 위한 조건은 이미 오래 전에 갖췄다. 최대한 빨리 회원국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 결정권은 그들(튀르키예와 헝가리)에게 있다. 우리의 가입을 늦춰서 튀르키예나 헝가리가 얻을 이익이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각에서는 미국 등 서방의 단일대오 전선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스값 급등 등 일부 경제적 어려움에도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서방의 연대가 굳건할 것으로 보는지?

“전쟁이 오래될수록 오히려 동맹이나 연합이 더욱더 굳건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유럽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든지 일본 뉴질랜드 이러한 아시아의 파트너들까지도 동맹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침략의 피해자이자 생존을 위해서 정당하게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져선 안되기 때문에 연합한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핀란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에너지 양이 상당해 지난 겨울 이전에는 어떻게 생존할 지 우려가 컸다. 하지만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풍력 수력 태양열 원자력 발전 등 에너지원을 다각화함으로써 극복해나가고 있다.

러시아가 핀란드 유제품이나 소비재의 큰 수입국이었고, 러시아에 투자한 핀란드 기업들도 많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도 봤다. 인적 교류도 단절됐다. 현재 핀란드는 러시아인들에게 관광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핀란드와 한국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 상공을 비행하지 못하고 우회해야 해서 핀란드-한국 간 비행시간이 더 길어졌다. 핀란드 국영항공사 핀에어(FINNAIR)는 부산-헬싱키 노선을 취항하려고 했는데 전쟁으로 어려워진 상황이다.

핀란드 외에도 전세계가 전쟁으로 인해 식량 위기, 인플레이션 등 여러 위기를 겪고 있다. 누군가는 분명히 그 책임을 져야 할텐데, 이는 당연히 우크라이나나 지지국들이 아닌 침략국의 몫이다.”

―러시아와의 국경에 울타리를 설치하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불법 이주를 막기 위해서다. 2015년 핀란드는 대규모 불법 월경으로 사회 불안을 겪은 경험이 있다. 2021년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에서 발생한 갈등이 핀란드에서 재발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목표다.”

(2021년 약 3만 명 이상의 난민이 벨라루스에서 폴란드로 불법 월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폴란드 정부와 여러 외신들은 벨라루스와 러시아가 유럽연합(EU)을 흔들기 위해 일부러 유럽으로 ‘난민 밀어내기’를 자행했다고 봤다.)

―유엔 근무 이력이 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엔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일각에서는 유엔이 우크라이나전에 있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나 유엔 의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입장이나 결정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중재해 우크라이나 식량을 수출할 수 있도록 ‘흑해 곡물 이니셔티브’를 성공시켜 글로벌 식량 위기를 완화했다. 이밖에 국제원자력발전소(IAEA)와 같은 유관기관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문제를 러시아와 논의하는 등 비가시적이지만 꽤 효과적인 노력들을 하고 있다.”

―핀란드는 산나 마린 총리를 포함해 3명의 여성 총리를 배출했으며 여성 장관 비율 또한 64%에 달하는 대표적인 성평등 국가다. 핀란드 여성 정책의 모토는 무엇인가?

“(오히려) 인구의 50%를 배제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한 외교부를 비롯해 일부 분야에서는 여성이 이미 절반을 넘는다.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2차 세계대전 중 핀란드 여성들이 산업에 활발하게 참여해야 했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됐다.

또한 흔히 뉴질랜드가 여성 참정권을 가장 먼저 인정한 현대 국가로 알려져있는데 이는 ‘투표권’만이고, 여성의 ‘피선거권’을 가장 먼저 보장한 나라는 핀란드다. 러시아로부터 독립도 하기 전인 1906년에 이뤄졌다. 이 같은 성평등적 경향을 지금의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나토 가입 문제를 앞두고도 안티 카이코넨 핀란드 남성 국방부 장관이 육아휴직을 해서 국제적 화제가 됐다. 핀란드 남성의 80% 정도가 출산 후 54일짜리 육아휴직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아직 남성의 육아휴직이 비교적 보편적화되지 않았다. 남성의 육아휴직이 왜 필요하다고 보는지?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라고 육아휴직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빠에게 양육과 가정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정책이다. 동시에 엄마의 양육 책임을 덜고 고정된 성역할을 타파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핀란드인들과 정부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핀란드 정부 입장에서 한국은 뜻이 통하는 ‘파트너’다. 기술 발전이라는 공통 분야가 있고, 국제 질서를 기반으로 다자간 협력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존경한다. 또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k-브랜드를 성공적으로 키워낸 ‘소프트 파워’를 지닌 국가라고 생각한다.”

이청아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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