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유럽 출장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찾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왼손에는 빨간색 책이 들려있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기원전 460년경~400년경)의 역작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한글 번역본이었다.
한 장관은 하얀색 겉표지를 벗겨내고 빨간 양장본을 그대로 들었는데, 검은색 수트와 대비돼 책이 눈에 확 띄었다. 양장본 표지에 적힌 ‘Ho Polemos ton Peloponnesion Kai Athenaion’(고대 그리스어로 표기된 책 제목) 글귀 때문에 “직접 원서를 보는거냐”는 말이 나올만큼 화제를 모았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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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스의 두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벌여 스파르타가 승리했지만, 이전투구 때문에 결국 그리스 세계가 쇠망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듯한 한 장관의 모습에 차기 총선 출마를 확신하게 됐다”며 “책을 통해 여당 내부가 분열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이 지난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내무·해외영토부를 방문해 제랄드 다르마냉 장관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아직 정계 입문을 선언하지도 않은 한 장관은 여권 차기 주자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3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2월 28일~3월 1일)에서 한 장관은 11%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20%)에 이은 2위였다. 3위 홍준표 대구시장(5%)에도 앞섰다. 한 장관 지지율은 지난해 6월 첫 조사에서 4%를 기록한 뒤 9→10→11%로 상승세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지지율 10%대를 찍었다는 것은 고정 지지층이 생겼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에 여권에서는 한 장관의 차기 총선 차출설이 힘을 얻고 있다. 대선주자급인 그를 선수로 내보내 선거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기현 대표도 전당대회 당시 한 토론회에서 한 장관 차출설에 동의했을 정도다.
반면 야권은 한 장관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에 앞서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이 체포안을 설명할 때 야유하지 말자. 괜히 한 장관의 무게감만 키워줄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고 실제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다만 국민의힘 관계자는 “‘검사 한동훈’은 똑 부러지는 사람이지만, ‘정치인 한동훈’은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다”며 “한 장관의 총선 차출이 현실화되더라도 숙제가 만만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출입국·이민 정책과 관련한 협력체계를 갖추기 위한 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유럽 출장을 가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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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관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비교적 낮은 호감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한국갤럽의 차기 주자 호감도 조사에서, 한 장관의 호감도는 29%로 홍 시장(37%), 유승민 전 의원(33%), 오세훈 서울시장(31%)보다 낮았다. 반면 한 장관의 비호감도는 53%로 비교적 높았다.
‘수사를 잘하는 검사’라는 이미지나,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의 질문을 곧장 반박하는 모습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 장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냉혈한’이다. 공감 능력을 중시하는 여성층이나, 소통을 원하는 2030에게는 비호감도가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도·무당층 포섭도 과제다. 지난 1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무당층 비율은 25%였다. 지난 대선때는 10% 중반대였지만 갈수록 중도·무당층의 규모가 늘면서 이들이 차기 총선의 ‘캐스팅보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 장관이 차출될 경우 중도·무당층의 마음을 잡는게 핵심 과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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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의 이준호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 외에는 한 장관이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아 중도·무당층은 물음표를 가진 상황”이라며 “검사 이미지에만 머문다면 한계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출신인 한 장관이 뚜렷한 지역 지지기반이 없는 것도 약점이 될 수 있다. 한 장관은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권에는 연고가 없다.
다만 국민의힘의 한 당협위원장은 “총선 필승을 위해서는 수도권 수복이 필요한데 한 장관이 서울 토박이라는 점이 오히려 도움될 것”이라며 “당에서는 서울 종로나 강남권, 혹은 서울의 험지에 내보내 승부수를 띄우자는 의견도 나온다”고 전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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