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평범한 시민, 총을 들었다
매설된 지뢰, 민간인 목숨마저 위협
지난달 31일 미얀마 카렌주 코커레이크에서 만난 시민방위군(PDF) 백호부대 써빅카 제3 사령관이 지뢰로 다리를 잃은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2021년 5월 미얀마 군부가 점령했다가 도망치면서 매설해둔 지뢰를 밟아 오른무릎 아래를 잃었다. 코커레이크(미얀마)=허경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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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합법적인 민주 정부를 무너뜨린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군정은 폭력과 공포정치로 국민을 탄압합니다. 미얀마 사태는 그러나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져 ‘잊힌 비극’이 됐습니다. 미얀마인들은 스스로 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고.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미얀마인들은 과거의 우리와 닮았습니다. 한국일보는 미얀마를 찾았습니다.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남동부 카렌주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 군부와 싸우는 시민방위군(PDF)과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학생군의 민주주의 수호 전쟁의 처절한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자유를 쟁취하려는 미얀마 시민방위군(PDF) 열망은 미얀마 군부의 잔혹한 무기 앞에서도 꺾일 줄 모른다. 카렌주 코커레이크 타운십(행정구역)은 군부와의 전투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지역이다. 이곳에서만 지난 2년간 800번 넘는 교전이 벌어졌다. 초소에서 만난 써빅카(56) 백호부대 제3사령관은 기자와 만나자마자 남자 전통 치마 ‘론지’를 무릎 위로 걷어 올렸다. 무릎 아래로 의족이 드러났다.
써빅카 사령관은 2021년 5월 쿠데타 군부가 점령했던 마을을 수복하고 정비하는 과정에서 터진 대인 지뢰에 다리를 잃었다. 군부가 도망치는 과정에서 저항세력 이동을 방해하기 위해 지뢰를 매설한 것이라고 시민군은 보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지뢰 사용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얀마군은 2021년 전 세계에서 지뢰를 사용한 유일한 국가 단위 무장단체이기도 하다.
써빅카 사령관은 다리 절단 수술 4개월 만에 목발을 짚고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미얀마군이 내 다리는 없앴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까지 없애진 못했다”며 “더 큰 걱정은 군부가 끊임없이 마을에 지뢰를 묻는 탓에 민간인 피해가 잇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악마의 알’이라 불리는 지뢰는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는 맹목적 살인 무기이자 비인도적 무기다. 한 번 매설되면 터질 때까지 살상력을 발휘한다. 종전도, 평화협정도 지뢰가 언젠가 터지는 걸 막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설되고 있는 수많은 지뢰가 언젠가는 미얀마인들을 죽거나 다치게 할 것이란 얘기다.
지난해 31일 코커레이크에서 만난 한 시민방위군(PDF)이 지뢰 폭발로 화상을 입은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코커레이크(미얀마)=허경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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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빅카 사령관의 다리를 앗아간 지뢰는 동료 병사를 실명시킬 뻔했다. 지뢰 파편에 눈과 팔을 다친 병사(32)는 화상 흉터를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다. “고작 흉터인 걸요. 군부 독재를 끝낼 수만 있다면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아요. 이제 겨우 2년이 지났어요. 우리의 혁명은 끝나지 않아요. 승리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 싸울 거예요.”
미얀마 공군이 무차별적으로 투하하는 폭탄도 시민군의 목숨을 위협한다. 지난달 30일 미얀마 미야와디를 거쳐 코커레이크로 향하는 길에 기자가 타고 있던 군용 차량이 폐허가 된 건물 앞에 갑자기 멈춰 섰다.
통신 기지로 쓰이던 곳이었지만 일주일 전 폭탄이 세 발 떨어져 완파됐다. 건물 앞에는 성인 남성의 가슴 높이 정도 되는 커다란 구멍이 몇 군데나 나 있었다. 운전을 맡은 시민군은 “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다들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며 “폭탄이 아무리 터져도 우리의 혁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너져 내린 건물 한쪽엔 "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Revolution must win)"라는 구호가 적힌 종이가 너덜너덜한 채 붙어 있었다.
지난달 29일 미얀마 카렌주 미야와디 레이케이코로 향하는 길목에 군부의 폭격으로 생긴 구멍이 나 있다. 레이케이코(미얀마)=허경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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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케이코·총도(미얀마)=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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