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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경비원 의심 피하려…모피코트 입고 전단지 붙이러 다니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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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미혜 샘컴퍼니 대표.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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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종합예술이에요. 엄마처럼 두루두루 잘 챙기고 섬세하게 다루는 게 중요합니다. 거기서 제가 빛을 발한 게 아닐까요.”

‘남초’ 공연계에서 손에 꼽는 여성 프로듀서인 김미혜(53) 샘컴퍼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열린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그는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박명성, 신춘수 등 쟁쟁한 남성 후보들을 제치고 박민선 스튜디오 선데이 대표와 함께 창작부문 프로듀서상을 받았다. 지난달 막을 내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1996년 국내 초연 이후 서울 공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냈다. 13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운이 좋았다”며 소탈하게 웃었지만 그 뒤엔 쉼 없는 뜀박질이 숨어있었다.

김 대표는 1991년 뮤지컬 ‘넌센스’로 데뷔한 배우 출신 프로듀서다. 계원예고와 성균관대 무용과를 졸업해 ‘넌센스’의 발레리나 수녀 역으로 첫발을 뗐다. 공연예술에 대한 애정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근처에서 학교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그는 “극장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기본으로 갔다”며 “나중에 직접 출연까지 하게 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은 당시 한 시즌에만 30번을 봤다”고 했다.

배우로 활약하던 그는 2010년 공연 제작 겸 배우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리게 된다. 샘컴퍼니는 배우 박정민과 강하늘, 김도훈 등을 발굴해낸 소속사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배우 황정민과 2004년 결혼한 뒤 이들은 ‘같이 무대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준히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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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샘컴퍼니 대표.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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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공연으로 신인 배우를 키워 대중매체로 진출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뮤지컬 배우 초반에는 TV나 영화에 진출하고 싶단 꿈도 있었지만 좌초됐거든요. 방법을 몰랐고 기회도 없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회사를 꾸렸습니다.”

유명인의 아내지만 무엇 하나 쉽게 이룬 것은 없었다. 2004년 결혼 당시 그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열연하는 중이었다. 결혼식 이틀 전, 그는 부산에서 낮 공연과 저녁 공연을 모두 끝내고 다음날에야 서울로 돌아왔다. 예식장에서 ‘딱 한 가지’ 준비해달라던 흰색 스타킹을 살 시간조차 없어 동네 편의점에서 급하게 구했다. 임신 6개월 차엔 지방 공연이 펑크났을 때 대역을 서주기도 했다. 2010년 회사 법인을 설립한 뒤엔 몸으로 뛰었다.

“작품 홍보 전단지를 아파트 꼭대기에서부터 집집마다 붙이면서 내려왔어요. 경비원에게 의심받지 않으려고 비싼 모피코트를 입고 뛰어다녔죠. 전화로 티켓을 예매하던 시절이라 제법 성공률이 높았습니다(웃음)”

프로듀서로서 첫 작품은 데뷔작인 ‘넌센스’ 시리즈였다. 가장 잘 아는 작품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 오래된 작품이지만 시대에 꼭 맞게 바꾸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작품 기획 단계부터 배우를 염두에 뒀다. 배우를 작품에 끼워 맞추는 대신 그에 맞게 작품 색깔을 조정했다. 그는 “배우로 키워준 조민 뮤지컬컴퍼니대중 대표가 2009년 별세 직전 ‘같이 넌센스 연출해보자’던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게 마음의 빚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제작사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성보단 작품 완성도에 무게를 둔다. 라이선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원작 제작사를 1년간 설득한 끝에 무대를 재창작했다. 코미디 장르 특성상 한국어 대사와 넘버를 현지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무대 회의만 54번, 각색 회의는 20번 가까이 했다. 온갖 작품 레퍼런스를 휴대폰에 저장해둔 탓인지 최근엔 고장이 났다. 그는 “여러 변수 때문에 작품은 예상보다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지만 잘 만든 작품은 언젠간 통한다”고 했다.

차기작은 다음달 31일부터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파우스트’다. 괴테 희곡이 원작으로 배우 유인촌, 박해수 등이 주역을 맡는다. 사람들이 연극을 통해 좋은 작품에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선정했다.

“어려운 글도 배우들의 대사로 들으면 이해가 잘 되고 금세 애정이 생겨요. 가장 아름다운 희곡이라고 생각하는 ‘맥베스’를 무대에 올려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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