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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공공요금 인상 파장

"4개월치 난방비가 9,000만 원"… '기름값 폭탄' 농어민 줄도산 현실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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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 실내등유 가격 급등 이어져
시설관리 비용 감당할 수준 넘어
인건비 부담까지 늘어 삼중고 호소
"농사 접어야" 곳곳서 아우성
한국일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꽃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꽃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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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경기 고양시 원당화훼단지 내 비닐 온실에서 호접란을 재배하는 권기현(61)씨는 치솟는 기름값 얘기가 나오자 긴 한숨부터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5,000㎡(1,512평) 남짓한 온실 유지비용은 지난달 1,000만 원을 넘겼다. 권씨는 "지난해 600만 원 수준이던 한 달 난방비와 가스 및 전기 요금이 두 배 가까이 급등했는데 자재 및 인건비까지 올라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2020년 터진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 만에 '대면 졸업식' 특수를 기대했던 화훼농가의 실망은 더하다.

면세유 폭등에 난방비까지 올라 시름


고물가 행진에 농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고유가 등으로 겨울철 시설농가의 피해가 전국적으로 크지만 단기간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아 줄도산 우려까지 제기된다.

강원 춘천시 신북읍에서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이모(34)씨는 "하우스 내부 온도를 야외보다 20도가량 높게 잡아야 하는데 6,000㎡(1,815평) 온실을 4개월 운영하는 비용이 지난해 5,000만 원에서 올해는 9,000만 원까지 늘고 있는 추세"라며 "방울토마토 도매가는 지난해랑 비슷한 수준이라 적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실제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평균 '면세 실내등유' 가격은 L당 1,297원으로 나타났다. 2021년 L당 평균 800원을 밑돌았지만,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꾸준히 오르기 시작해 1,300원대에 육박했다. 일부 지역에선 L당 1,400원에 실내등유를 공급하는 곳도 등장했다.

농사용 전기료도 지난해 말과 비교해 13% 이상 급등해 농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농작물 품질 유지를 위해 하루 종일 난방기기를 돌려야 하는 농가 입장에선 치솟는 기름값과 전기료가 고스란히 적자로 쌓이면서 매일 애가 타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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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평균 면세 실내등유 가격. 그래픽= 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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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민들도 고유가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출어 비용 중 많게는 60%를 차지하는 면세유 값이 200L 한 드럼당 25만 원 선으로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과 비교해 2배가량 올랐다. 포항수협 관계자는 "선박 엔진가동과 집어등까지 기름 소비가 많은 오징어채낚기 어선의 경우 출어비용이 최고 9,000만 원까지 늘어났다"면서 "하지만 어획량이 만족스럽지 않아 지난달부터 조업을 포기하는 어민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권종 강원도유자망협회회장은 "선박의 기름 소비량이 육지 차량보다 3배 정도 많아 최근 오른 기름값으론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출어비용 부담으로 항구와 가까운 근해에서 조업할 수밖에 없어 어획량 감소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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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시 신북면에서 방물토마토를 재배하는 이규호씨가 생육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이규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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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악순환 막기 위해 특단 대책 절실


연중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농어민들은 최근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인건비 부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고 있다. 전남 화순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김창호(43)씨는 "가까스로 실내 온도를 적정 수준보다 3도 낮은 13도로 유지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간 인건비가 시간당 1만2,000원을 넘어 작황이 좋아도 적자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라고 사정을 전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농가마다 위기 타개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전남 담양군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윤모(55)씨는 "한 푼이라도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부직포와 비닐 여러 겹으로 하우스 내 한기를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단시간 내에 나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농어민들의 더 깊은 걱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미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어 에너지 가격 안정을 장담할 수 없고, 기록적 한파와 폭설 등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까지 이어지면서 시설 유지비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급량 감소로 인한 고물가 상승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서경태 고양화훼단지 회장은 "줄도산이 현실이 되기 전에 정부 대책이 나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종인 강원대 원예·농업자원경제학부 교수는 "농산물은 공급과 수요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로 난방비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힘든 특성을 갖는다"며 "에너지비용이 급등한 지금 상황에선 농가의 고통이 클 수밖에 없어 면세유 대상 범위 확대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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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난방비로 인해 한계상황에 내몰리는 전국 농가들이 정부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강원도농업기술원에 마련된 딸기 온실. 강원도농업기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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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장성=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포항=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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