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아홉 번째 시간’(1999)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김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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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서울 리움미술관에 찾아왔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각을 넘어뜨리고 그 위에 돌덩어리를 올려놓은 예술 작품이다. 교황이 운석을 맞은 상황을 연출한 것. 지난 1999년 스위스의 유서 깊은 미술관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였던 작품을 한국으로 옮겨왔다. 작품에는 기독교에서 최후의 때를 의미하는 ‘아홉 번째 시간’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신자가 13억 명에 달하는 종교의 수장을 연약한 인간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관람객의 마음속에 권위와 실패, 성공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부산 부산시립미술관에는 더욱 당황스러운 장면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일본 만화 주인공처럼 묘사된 남녀가 각각 성기와 가슴에서 나오는 체액을 휘두르는 회화('히로폰')가 전시돼 있다. 가운데는 남성 작가의 나체 자화상이 그려져 있는데 말풍선 안에 “원래는 애니메이션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독히도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는 자전적 문장이 쓰여 있다. 언뜻 성인물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일본 대중문화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순수미술작품에 끌어들임으로써 미술의 범위와 미학적 전통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흔든다.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는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한국을 찾아왔다. 관람객의 허를 찌르는 블랙유머를 구사하는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가 지난달 31일부터 7월 16일까지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일본 '오타쿠' 문화를 작품에 끌어들여 미술을 대중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가 지난달 26일부터 3월 12일까지 부산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리움미술관 입구와 로비에 노숙인을 형상화한 설치작품 두 점(동훈과 준호)을 전시했다. 김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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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 일상적 이미지로 충격을 주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는 스스로 ‘미술계의 침입자’라고 소개한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발상만으로 미술계를 뒤흔들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일상적 이미지를 활용하는 점이 오히려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카텔란은 변기를 내걸고 '작품'이라고 주장했던 마르셀 뒤샹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리움미술관 전시장 입구와 로비 안쪽에는 노숙인 두 사람이 누워 있다. 이는 모두 조각이다. 로비에는 박제된 비둘기 조각들이 곳곳에 놓여 있고 로비 한편에는 코오롱과 NC소프트의 광고까지 붙어 있다. 지하철역이나 길거리를 뚝 떼어 내 미술관으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이 미술관에 들어오면서 ‘작품’이 되는 모습을 형상화, 현대미술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박제된 비둘기에게는 ‘유령’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그'가 리움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김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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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은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일을 꺼린다. 관람객이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발표 당시의 맥락을 알 때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2001년 작 ‘그’는 뒤에서 보면 반성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작은 조각상인데 관람객은 정면에서 봐야 그 작품이 히틀러의 조각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 위치를 지켰던 스웨덴에서 먼저 공개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번 전시에는 당초 전시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던 2019년 작 ‘코미디언’도 전시됐다. 이 역시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된 장소가 세계적으로 이름난 미술장터 아트 바젤 마이애미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카텔란은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바나나를 덕테이프로 벽면에 붙여놓고 12만 달러에 판매했다. 작가의 이름값에 기대는 미술시장과 화랑의 관계, 이들을 발판으로 운영되는 미술시장을 바나나 하나로 풍자한 작품이다. 당시 한 행위예술가가 바나나를 벽에서 떼어 내 먹어 버리면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지난달 26일 부산 부산시립미술관을 찾은 무라카미 다카시가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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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시, 만화를 예술로 만들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서브컬처(하위문화)’ 취급을 받던 일본의 대중문화를 본격적으로 작품에 녹여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 미학의 정수를 우키요에(일본 에도시대 목판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평면성’으로 규정하고 ‘슈퍼플랫(superflat)’이라는 독자적 미학 개념을 만들어냈다. 미술사 연구자 고동연씨에 따르면 ‘슈퍼플랫’은 단지 시각적인 ‘납작함’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깊이감은 사라지고 납작하게 눌려진 세계를 그린 것만 같은 그의 그림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은 일본에 ‘전통은 무엇이고, 미술은 무엇인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 결과 그의 그림 속에서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일본의 대중문화가 ‘새로운 일본 문화’의 자리에 올라섰다. 시각적으로 세련된 묘사에 논리까지 갖춘 그의 작품들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대중문화의 세계화와 맞물려 미술계에서 탄탄한 자리를 확보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꽃의 이미지로 가득 채운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실. 귀여움과 기괴함이 동시에 감도는 공간이다. 부산=김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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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은 전시장을 ‘귀여움’과 ‘기괴함’ ‘덧없음’ 분류로 나눠서 작품들을 전시했지만 미술관 측이 스스로 밝혔듯이 세 인상은 다카시의 작품에서 뒤섞여 나타난다. ‘귀여움’ 전시장 가운데 한 곳은 다카시가 1995년부터 제작을 시작한 ‘꽃’ 시리즈로 가득 채워졌는데 해맑게 웃는 꽃들이 가득한 모습은 한편으로는 공포스럽게 보여지기도 한다. 다른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작품인 ‘스파클/탄탄보: 영원’에서는 기괴함이 더욱 강조된다. 화려한 색으로 치장된 각종 요괴들은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빨은 날카롭고 입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내린다. “너 괜찮니?”라고 묻거나 “진짜로 지금 세상이 엉망이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등장인물들의 그림에서는 세계의 운명을 걱정하는 작가의 의도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마지막 전시장에서는 작가 자신과 반려견을 좀비로 만든 동일본대지진 이후 만들어진 2022년 작 조각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가 관람객을 맞는다.
무라카미 다카시 본인과 반려견을 좀비처럼 묘사한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 부산=김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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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시는 ‘카이카이 키키’라는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는 것으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이 스튜디오를 통해서 그는 작품을 제작하고 화랑을 운영하며 관련 미술 상품을 만들고 판매까지 한다. 고동연씨는 “다카시가 이러한 점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다카시가 다른 작가들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한다. 다카시가 ‘일본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지난달 26일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저와 나라 요시토모가 등장한 이후 저희를 모방하는 작가도 많이 등장하게 됐다. 아트라는 게 이렇게 모방만 해서 되는 건가? 그런 의문도 있다”면서도 “(자신에게는) 아트의 문턱을 낮추고 아주 어려운 세계관이 아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트를 만들었다는 공적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두 전시 모두 무료 관람.
무라카미 다카시의 회화에서는 일본적 평면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부산=김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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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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