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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형제복지원 갇혀 가족 잃은 피해자, 48년 만에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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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진상규명으로 가족 상봉
형제복지원 피해자 146명 추가 확인
중앙정보부, 1977년 사태 파악하고도 묵인


매일경제

진실화해위원회, 형제복지원 2차 진상규명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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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자 유 모씨(59)는 11살이던 1975년 당시 아버지의 사망 이후 형제들과 함께 고아원에 맡겨졌다. 고아원에서의 구타와 학대를 견디다 못한 유 씨는 혼자 고아원을 탈출해 어머니를 찾고자 부산역으로 갔지만, 경찰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된 후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 유 씨는 최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형제복지원 관련 조사를 받던 중 어렴풋이 기억하는 고향의 지형과 학교 이름, 형제들의 이름 등을 근거로 모친과 형제들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고, 지난달 26일 모친과 48년 만에 상봉했다.

9일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관련 2차 진실규명 결정 내용을 발표하며 피해자들의 이 같은 사례를 공개했다. 군사정권 당시 부산 지역 최대 인권유린으로 기록된 형제복지원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피해자들이 수십 년 만에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은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2차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지난 1차 규명 당시 확인된 피해자 191명에 더해 146명의 추가 피해자를 확인했다고도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82년 6살의 나이로 어머니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안 모씨는 다른 시설로 옮겨지며 어머니와 강제로 헤어지게 됐다. 어머니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던 안 씨는 어렴풋이 기억하는 고향과 형제들의 이름을 근거로 주민등록 자료를 추적했다. 안 씨의 어머니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여전히 실종상태로 남았으나, 그의 형제 1명은 신원이 확인돼 안 씨는 41년 만에 가족의 연락처를 전해받을 예정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가족들이 끈질긴 수소문 끝에 피해자를 찾았지만 지난해 사망해 만나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선천성 소아마비 장애인이던 이 모씨는 다른 이름으로 이중호적이 만들어진 채 1982년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행방불명이 됐다. 가족들이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이 씨를 찾았으나 지난해 7월 요양원에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이 같은 사례들이 국제연합(UN) 강제실종방지협약이 규정한 강제실종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이자, UN 아동권리협약상 여러 조항을 위반하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진상규명 결정에 따르면 1977년 중앙정보부가 내사를 통해 형제복지원의 실태를 파악하고도 이를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77년 10월 12일 중앙정보부는 부산 체신청 산하 기관 모집 시험에 응시하러 부산에 갔다가 야간 통행금지 위반으로 붙잡힌 20대 청년이 형제원에 끌려가 삭발당하고 2일간 불법감금되거나, 원양어선 어부가 야간 통행금지를 위반해 형제원에 감금, 원양어선에 승선하지 못해 생업을 잃는 등의 구체적인 피해 첩보를 입수했다.

2달 뒤인 같은 해 12월 16일 중앙정보부의 내사 문건에는 “형제원 단독으로 부랑인을 단속, 수용한 후 수용자 명단을 관할 파출소 및 북부출장소에 통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적시하며 형제복지원의 자의적 단속을 당국이 형식적으로 사후 승인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내사보고서에서는 형제복지원 측의 ‘수용을 거부해 강제력을 행사한 것’, ‘위생과 도주의 경우 일반인과 식별하기 위해 삭발시킴’ 등의 주장을 받아들여 ‘특이사항 없음’으로 보고했다. 또한 “부산 시내의 부랑인을 수용, 선도함으로써 범죄의 사전 예방 및 건전한 부산시가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며 이들을 비호하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진실화해위의 1차 진실규명 당시에는 1986년 보안사령부(현 국가방첩사령부)의 수사 공작, 1987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주재 대책회의 등 주요 수사기관이 형제복지원의 범죄사실을 인지하고도 오히려 비호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이보다 10년 가까이 앞선 시기에 중앙정보부가 이미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을 알고도 방조한 것이 새롭게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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