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 올해 첫 언론견학…내외신 기자 40여명 참석
북측 조용…군사분계선 너머 무성했던 잡초 제거돼
판문점 지키는 한국군 |
(판문점=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1953년 6·25 정전협정이 체결된 역사적 현장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그로부터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긴장감은 여전하고 분단의 현실도 그대로였다.
7일 유엔사가 정전협정 70주년인 올해 실시하는 첫 판문점 언론견학에서는 묘한 긴장감 속에 남북한 대치 현장을 여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견학 브리핑을 맡은 그리프 호프만 유엔군사령부 국제정치담당관(중령)은 내외신 기자 40여 명과 함께 판문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길 양쪽은 대전차 지뢰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무장지대(DMZ) 내 남측 민간인 지역인 대성동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안에서는 대형 태극기가 100m 높이 첨탑에 걸려 펄럭였다.
이후 취재진은 3초소에서 하차해 높은 곳에서 북측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곳은 흰색 말뚝으로 표시된 군사분계선(MDL)으로 둘러싸여 상대적으로 북쪽으로 둘출된 지역이다.
군사분계선 말뚝 |
흐린 날이어서 선명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북측 기정동 마을에서 인공기가 걸린 160m 높이 게양대와 개성공단 지원센터 등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호프만 중령은 남한이 국기 게양대를 세우자 북한이 이에 대응해 게양대를 더 높게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후 판문점 견학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상징적 파란색 건물 부근으로 이동하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기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판문점 찾은 취재진 |
T1, T2, T3로 대표되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이 나란히 서 있는 곳에는 MDL을 상징하는 콘크리트 턱이 있다.
원래 판문점 안에서는 남북의 경계가 없었으나 1976년 북한군의 '도끼 만행 사건' 이후 생겼다.
특히 T2는 유일하게 JSA 내에서 자유로이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회담장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의 마이크 줄이 내부 MDL 역할을 하고, 회담장을 선점한 측은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판문점 찾은 취재진 |
호프만 중령은 버스에서 하차하기 전에 북한군을 볼 경우 손가락질 등 행동은 자제해달라고 안내했지만, 이날 북측 지역에서 북한군의 움직임은 전혀 관찰되지 않고 적막감만 맴돌았다.
판문점에 남측 관광객이 오면 북한군이 이따금 망원경을 들고 감시하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찍혔으나 이날은 구경하기 어려웠다. 판문각의 창문도 전부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내부 분위기를 알 수는 없었다.
특히 북한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판문각 밖으로는 거의 나오지 않고 직통전화로만 소통하며 잠깐 나올 때도 방호복을 착용한다고 했다. 북한군은 코로나19 이후 북측 견학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경계선 북측 지역에는 직전 언론견학이 있었던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무성하게 자란 잡초가 여럿 포착됐으나 이날은 깨끗하게 제거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군사분계선 지키는 한국군 |
호프만 중령은 "정전 70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상기해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우리가 정전 체제이고, 정전을 잘 준수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나 적대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잘 유지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2015년 북한군이 DMZ 수색로 통문 인근에 매설한 목함지뢰가 터지면서 한국군 2명이 다리를 잃은 안타까운 사례를 전하면서 긴장감이 맴도는 지역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초소 근무 중인 북한군 |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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