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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추모와 분노 공존하는 시청 앞 분향소… 이태원 참사 유족 “목숨 걸고 지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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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난로 하나 못 들여놓게 하는 오세훈은 사퇴하라!”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의 유족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한 이틀 뒤인 6일 오전 10시반, 경찰과 유족 측이 돌연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청사 내부로 진입하려는 유족 및 시민단체와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이 팽팽히 대치했다.

세계일보

6일 서울시청 입구에서 유족과 경찰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마구 뒤엉켜 있다. 채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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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소형 난로 반입 시도였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故) 최민석군의 어머니인 김희정(55)씨가 분향소에 난로를 가져가려는 것을 경찰들이 둘러싸며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김씨가 뒤로 넘어져 뇌진탕 증상을 보였다. 결국 김씨는 구급차에 실려갔다.

고 김수진양의 이모는 “민석이 엄마가 난로를 분향소에 가져오려고 했는데 여경에 제지당한 이후, 이 일을 경찰에게 따지는 과정에서 실신해 뒤로 넘어졌다”며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크게 부딪서 구급차에 실려갔는데, 다행히 의식은 회복했다”고 말했다.

텐트 내 난로 반입 저지는 전날 유족들이 “분향소를 철거하러 올 경우 휘발유를 준비해 놓고 아이들을 따라가겠다. ‘제2의 참사’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조치로 보인다.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이와 관련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다.

난로 소동에서 시작된 충돌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흥분한 유족들이 서울시의 사과,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시청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이를 막아서는 경찰에 더욱 분노한 유족들은 억울함을 쏟아냈다.

몸싸움 도중 바리케이드를 넘어간 고 이지한 군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아들 잃은 것도 서러운데 영정지키기가 이렇게 어렵냐”, “밥도 못 먹어 소리 지르기도 힘든데 난로도 못쬐냐”며 울부짖었다. 다른 유족들도 경찰들 앞에 대자로 누워 “우리 여기서 죽을 것 같으니까 얼른 오세훈 내려와라”라고 소리쳤다. 이 과정에서 3명의 유족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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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6일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겠다는 서울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최상수 기자


이날 오후 1시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서울시의 ‘시청 앞 분향소 철거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유족들은 “분향소를 목숨 걸고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이종철 유가족 대표는 “시청 앞 광장에 지난 11월 합동분향소를 차렸듯이 영정과 위패를 놓아서 공간을 마련해주길 서울시에 인도적으로 요청한다”며 “시에서는 억지라고 하지만 저희 요구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살아있는 우리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지만, 저기 안에 있는 아이들은 죽어서라도 지킬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당초 이날 오후 1시로 예정됐던 서울시의 분향소 강제 철거는 집행되지 않았다. 한발 물러선 서울시는 이날 2차 계고장을 전달하고, 행정대집행을 연기했다. 다만 “기습 설치된 분향소는 절차상 불법”이라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어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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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많은 시민이 방문해 헌화를 하고, 분향소를 지키는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직장인 A(34)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들렀다”며 “자식을 잃은 아픔을 100%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돼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노 신사는 검은색 단상 위에 놓인 영정을 한참 바라보다 손으로 어루만지고는 이내 돌아섰다. 그 시선을 따라가보니 환하게 웃고 있는 청년의 얼굴이 있었다. 신사가 돌아선 자리에는 하얀색 국화가 수북이 쌓였다. 그 다음 분향소에 들어선 중년 여성은 손에 든 국화꽃을 단상에 올리고 영정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눈물을 훔쳤다.

분향소 주변에는 경건함이 흘렀고, 추모와 분노가 공존했다. 서울광장 곳곳에 경찰 수백명이 배치돼 분향소를 둘러쌌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기동대 7개 부대(약 500명)가 출동했다. 시청 입구에 이중으로 설치된 바리케이드, 드나드는 인원을 삼엄히 검사하는 경찰의 형광색 제복이 이날따라 유독 눈에 띄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정지혜·채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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