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 중앙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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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무임승차 비용 보전, 에너지 재난지원금 지급,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횡재세 도입….
연초부터 국회는 물론 서울시까지 나서 예산을 풀거나 세제를 손질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나라 곳간을 책임진 기획재정부가 난감해졌다. 방만 재정을 우려하며 선을 긋고 나섰지만, 연말 '총선 시즌'에 접어들수록 압박이 더해질 전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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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의에 불을 붙인 건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 시장은 지난달 3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4월로 예정된 지하철 요금 인상 폭을 조절할 계획이 없냐는 질문에 대해 “기재부가 입장을 바꾸는 것이 전제 조건”이라며 “지금이라도 기재부가 생각을 바꿔 올해 중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한다면 요금인상 폭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임승차 제도는 국가 복지 정책으로 결정해 추진한 일이니 기재부가 뒷짐 지고 있을 일이 아니다”란 글을 올렸다. 예산 편성 철이 아닌데도 기재부를 압박한 건 실현 가능성보다 버스·지하철·택시비 등 잇단 교통요금 인상 부담으로 여론이 악화한 상황에서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란 지적이 나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3일 “지자체가 1년에 수천억 원씩 적자를 부담하면서 계속 가는 게 맞지 않는다는 인식은 있다”며 “(무임승차) 연령을 올리는 문제라든지 적자를 (기재부가) 분배할 거냐 하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거들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은 ‘세대 갈등’을 피하면서도 노인 표를 따져야 한다”며 “기재부를 때려서라도 경쟁적으로 서민 경제를 챙기겠다는 목소리를 내는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기재부는 ‘수용 불가’ 입장이다. 서울시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깨진 유리창(작은 문제를 방치하면 큰 문제가 된다)’ 이론처럼 다른 지자체에서도 교통뿐 아니라 공원·박물관부터 지자체 고유사무인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등 영역까지 중앙정부가 적자를 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줄줄이 나올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하철 요금 결정과 무임승차 적자에 따른 비용 부담은 모두 지자체 소관”이라며 “적자가 부담된다면 무임승차를 없애거나 할인을 축소하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난방비 관련 항목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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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파에 곳곳에서 나온 난방비 지원 확대 요구도 기재부를 겨냥한 건 마찬가지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국민 60%인 '중산층'에 난방비를 지원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난방비 지원 대상을 중산층으로까지 범위를 넓히게 된다면 기존 예산과 기금 활용, 예비비 투입 등으로는 부족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야당이 제안한 30조원의 추경 중 7조2000억원을 에너지·물가지원금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소득 상위 20%를 제외한 80%에게 1인당 10만~25만원씩 지원하는 내용이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달 26일 “추경을 편성해 전 가구에 3개월간 10만원씩 지급하자”며 거들었다.
추경에 대해 기재부는 연초부터 줄곧 부정적이다. 아직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의 높은 수준에 머무는 상황에서 추경으로 돈을 풀면 물가 잡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1000조원대 국가채무가 더 늘어나는 것도 부담이다. 무엇보다 중산층 지원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철학'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 편성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이미 여러 차례 못 박았다. 추 부총리는 “예산 편성안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추경에) 동의할 수 없고, 검토하지도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막 올해 예산 집행을 시작했는데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추경을 편성하는 건 재정 운용의 ABC에도 맞지 않다는 이유도 들었다.
지난해 호실적을 거둔 정유사로부터 ‘횡재세’(초과 이윤세)를 거둬 에너지 지원금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다. 야당은 “지난해 고유가에 정유 4사가 막대한 수익을 올렸는데도 고통 분담이 없다. 정부가 부과금을 걷어 에너지바우처 기금으로 써야 한다. 이 방식을 하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횡재세를 입법해 강제할 방안까지도 추진하겠다”고 주장했다. 추 부총리는 “특정 기업이 특정 시기에 이익이 난다고 해서 횡재세 형태로 접근해 세금을 물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문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의 계절’에 접어든다는 점이다. 경제 위기에 대한 여야 간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결국 기재부를 향해 예산을 풀라는 압박으로 수렴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조차 연금·노동 개혁 등 어려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줄 ‘당근’이 필요한데 긴축 재정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여야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성 예산 편성 요구가 빗발칠 것”이라며 “기재부가 (포퓰리즘에 꺾여) 지난 정부 최대 규모, 최다 추경을 편성해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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