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현장선 무용지물
매뉴얼별로 다르기도…비슷한 상황에도 소극적vs적극적 조치 서로 달라
전문가들 "현장에서 매뉴얼 지킬 수 있는 환경부터 보완해야"
한파 속 주취자 사망이 잇따르면서, 이들을 방치한 경찰관들의 안일한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경찰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는 여론과, '경찰의 잘못'이라는 여론이 맞붙는 상황입니다. 경찰이 직접 만든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들을 살펴보니, 이들이 취해야 할 보호조치들이 분명히 적시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매뉴얼은 무용지물, 지켜지지 않았을뿐더러 매뉴얼별로 상이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습니다. 일선 경찰관들은 현실적으로 매뉴얼을 지키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고충을 토로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장 최소한의 행동 요령을 적어 놓은 매뉴얼이 작동할 수 있도록 교육 및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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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북구, 동대문구 등에서 일선 경찰관들이 방치한 주취자가 숨진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찰의 안일한 보호조치에 대한 논란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찰이 스스로 만든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은 무용지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현장선 무용지물
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경찰청이 발간한 <보호조치 업무 매뉴얼>은 주취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명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정작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매뉴얼은 단순 주취자와 의식이 없는 만취자를 구분한 뒤, 조치가 필요한 주취자에게 경찰이 해야 할 보호조치 의무 및 요령을 명시했다.
사례별 조치요령도 상세히 담겼다. 예를 들어 주취자가 도로변에 누워 졸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을 때 "교통사고 등 위험요인을 제거"하거나 "안전한 장소로 이동 조치", 혹은 "그대로 두면 위험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일단 지구대(파출소)로 동행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현장 조치요령'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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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매뉴얼은 현장에서는 '사문화'되어 있었다. 지난달 19일 저녁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발생한 주취자 사망사고에서도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은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주취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2명은 거리에 누워있는 주취자와 대화를 시도하다 길 건너편에 세워둔 순찰차로 돌아갔다. 경찰관들이 차 안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사이에 결국 주취자는 차에 치여 숨졌다. 교통사고 위험요인을 제거하거나 주취자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라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사망 사고를 부른 셈이다.
방치돼 사망한 주취자들이 증명하듯, 주취자를 의료기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매뉴얼의 지침도 현장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경찰청 매뉴얼에 따르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거나 의식이 없는 만취자'는 즉시 의료기관, 즉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로 인계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경찰들이 주취자를 응급의료센터로 넘겨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선 지구대 경찰 관계자는 "매뉴얼 상으론 주취자를 어디(주취자 응급의료센터 등)로 데려가야 한다"면서도 "데려가려 해도 조건을 이것저것 따지니 (데리고 가기 어렵고) 경찰관이 보호할 수도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매뉴얼별로 다르기도…제각각 소극적vs적극적 조치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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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경찰청과 일선 서의 매뉴얼이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 현장 경찰관들의 대응에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경찰청 매뉴얼에는 경찰의 주취자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데, 같은 대목에서 일선 서가 직접 만든 매뉴얼은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경찰청의 매뉴얼에는 "즉시강제로서의 경찰의 보호조치는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발동하여야 하므로 급박한 위험성이 없는 일반적인 주취자는 (…)경찰의 보호조치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지구대(파출소)에서의 주취자 보호는 '최단 시간'으로 한다"는 등 주취자 보호에 대해 방어적인 문구들이 명시돼 있다.
반면 수도권의 한 경찰서에서 스스로 만든 <보호조치 대상 주취자 대응 총괄> 매뉴얼에는 주취자에 대한 보호조치는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의무사항이자 재량의 여지 없이 반드시 집행해야 하는 '기속행위'로, "기속 마무리 처리를 요망"한다며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나아가 해당 매뉴얼은 경찰관이 보호조치 의무를 위반하면 국가에게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파출소에 있던 주취자가 기도가 막힐 때까지 경찰들이 방치해 결국 숨진 사건에 대해 "생명·신체에 위해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조치하여야 할 주의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한 책임을 인정하여 국가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선고2001다 24839)가 인용돼 있다.
결국 두 매뉴얼 모두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을 뿐더러, 내용도 제각각인 탓에 오히려 일선 경찰관들의 현장 대응에 혼란만 낳고 있다.
동국대학교 이윤호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매뉴얼은) 양날의 칼 같은 것"이라며 "과도하게 오래 보호하면 오히려 주취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호조치를 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매뉴얼 지킬 수 있는 환경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현장 대응의 교과서인 '매뉴얼'부터라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주문한다. 매뉴얼 그대로 지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기본'부터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이윤호 교수는 "매뉴얼이 작동하도록 (경찰에 대한) 교육,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동시에 소방, 지자체 등과의 연계 활동이 활성화되어 경찰이 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국대학교 이웅혁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매뉴얼을 지킬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매뉴얼이 지켜질 수 있도록) 보호조치와 관련된 시설과 공간 등 기본적인 인프라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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