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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日 국민작가가 사랑한 '모나카'…그냥은 못사는 139년의 맛 [백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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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가게

시간의 힘, 믿으십니까. 백년을 목표로 달려가는 가게, 혹은 이미 백년을 넘어서 수백 년의 역사를 쌓은 곳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본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백년가게’를 찾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무문을 열고 들어간다. 묵중하지만 포근한 느낌의 가게 안에 한발 들여놓는 순간. 의외의 장면에 놀라 뒷걸음질 치게 된다. 먼저 하나. 물건이 하나도 없다. 정확하게는 ‘없다’기 보단 포장된 종이 가방만 볼 수 있을 뿐, 일본의 문호들이 사랑한 과자 ‘모나카’를 눈으로 볼 수가 없다. 바삭 달큰한 모나카를 팔지만, 정작 가게엔 단 한 개도 전시하지 않아서다.

또 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들, 살 수 없다. 사전에, 그것도 전화로(인터넷 예약은 안 된다) 예약을 한 사람들만 ‘직접’ 이곳으로 찾아와야 종이 상자에 곱게 포장된 모나카를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열 개들이 한 상자에 1만원 정도. 한 개에 110엔(약 1000원)인 모나카를 한입 베어 물기 위해선 상당한 수고로움을 견뎌야 하지만, 가게 앞은 늘 북적인다. 일본 도쿄 긴자(銀座)의 139년된 모나카 가게, 쿠야(空也)다. 지난달 12일 5대 사장 야마구치 히코유키(山口彦之·43)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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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쿠야 가게 내부 모습.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무 기둥에 한글로 붙어있는 '품절' 안내문이 보인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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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가 사랑한 모나카



‘나는 고양이,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선가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곳에서 야옹야옹 울던 기억만 남아있다.’ 쿠야의 모나카는 이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가 사랑한 과자로도 유명하다. 일본 지폐 1000엔짜리에 그려져 있는 소세키는 ‘국민 작가’로 지금도 영향력이 상당한데, 실제로 소세키 소설에선 쿠야의 모나카가 종종 등장한다. 야마구치 사장은 “감사하게도 나쓰메 소세키의 팬분들이 사랑해준 덕으로 지금껏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쿠야의 시작 또한 한 편의 이야기 같다. 창업주는 에도시대, 에도 성에서 일본 전통 바닥재인 다다미 일을 했다. 그러다 1867년 지금으로 치면 정권교체와 같은 대정봉환(大政奉還·에도 바쿠후가 천황에게 정치권을 돌려준 사건)을 겪으며 일감을 잃었다. 고민하던 그에게 스님이 제안한 것이 바로 과자. 스님의 아이디어에 당시 가장 번화했던 우에노에 1884년 가게를 열었다. 가게 이름은 일본 헤이안(平安·794~1185) 시대, ‘나무아비타불’을 입으로 소리 내는 방식으로 염불을 처음으로 시작한 스님(空也上人) 이름을 땄다. 초대 사장에겐 자손이 없었는데, 함께 일하던 직원이 이어받게 됐고 이후로 야마구치 가문의 업이 됐다. 전쟁으로 우에노에 있던 가게가 불타면서 긴자로 옮겨와 지금껏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눈과 코로도 먹는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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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야의 모나카는 낱개론 팔지 않는다. 종이 상자에 세로로 세워져 포장되는데, 이 역시 옛 방식 그대로다. 김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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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모든 것은 아날로그다. 매일 아침 7시 반부터 모나카에 들어가는 팥소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모든 과정이 3명의 직원의 손으로 이뤄진다. 하루 8000개만 딱 만든다.

직원을 늘리고, 기계를 동원해 생산을 늘리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야마구치 사장은 고개를 젓는다. “옛날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앞으로도 이 방식을 고수하겠다”고 한다. 왜일까. 맛 이야기를 꺼낸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과자가 맛있어진다”는 거다. 직원들은 오후 4시면 퇴근한다. 주5일도 꼬박 지킨다. 바삭하지만 고소하고, 달콤한 팥소를 즐길 수 있는 모나카의 맛은 심플하기 짝이 없지만 만드는 사람도 지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모나카 맛에 몇점이나 줄 수 있냐고 했더니 “100명의 손님 모두 다 맛있다고 해주면 감사할 일이지만, 80점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웃돈을 얹어 거래될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지만, 아직도 20점이나 올릴 수 있는 맛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단 얘기다. 프로다.

유명해도 가게 홈페이지 하나, 컴퓨터 한 대 없이 전화로만 주문을 받고 택배조차 하지 않는 아날로그 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야마구치 사장은 “옛 방식을 고수하는 대신, 그만큼 가격을 올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손님이 모나카 상자를 열었을 때 풍겨나오는 모나카의 향, 그리고 가지런히 세워 넣은 형태까지도 옛 방식 그대로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돈 1000원짜리 모나카 하나에 시각과 후각까지 ‘생각해’ 정성을 쏟는 것이다.



구마모토에서 경험한 과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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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쿠야의 5대 야마구치 사장. 뒷편에 있는 선반이 텅 비어있다. 김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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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던 그가 스마트폰을 뒤져 사진 한장을 보여준다. 2016년 구마모토(熊本) 지진 당시의 모습이다. 일 때문에 갔던 구마모토는 진도 7.5의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졌다. 대재앙에 사람들은 집을 잃고 피난처에 몰려들었다. 지진 발생 4일 뒤, 만든 과자를 차에 싣고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 갔다. 과자를 어르신들부터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더러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야마구치 사장은 “과자가 인간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과자가 가진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유명 과자점이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코로나19다. 거짓말처럼 긴자에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계속할 수 있을까, 버텨낼 수 있을까. 난생처음으로 불안이 엄습했다. 그런데 손님이 찾아왔다. 차를 탄 채 지나갈 테니 포장된 모나카를 달라는 거였다. 손님의 힘으로 위기를 넘기면서 그는 “코로나로 우리 모두 불안할 때, 우리집 과자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게 됐다”고 했다.



소소하지만 천연기념물같은 가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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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쪽, 예약 주문을 적은 종이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김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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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떤 그림일까. 그는 “거창한 비전을 갖고 일을 하고 있진 않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불편하지만 소소한 가게”로 이어나가겠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종이의 시대가 끝났다고, 디지털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지금도 전화로 주문을 받고, 그걸 손으로 받아 적어요. 아마존 같은 데서 간단히 클릭 몇번으로 간단히 살 수도 없어요. 여기 오지 않으면 못 사니까요. 불편한 가게, 천연기념물 같은 가게이겠지만 사실 택배를 받고 하면 준비가 필요하고, 그러면 비용이 들게 됩니다. 모나카를 한 개씩 팔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예요. 옛날부터 해온 방식 그대로, 변하지 않는 방식을 유지하지만 이걸 좋아해 주시는 손님이 계시는 한, 손님들에게 변하지 않는 맛을 값을 올리지 않고 드리고 싶어요.”

규모를 늘려 돈을 벌기보다, 맛을 지키겠다는 어지간한 뚝심이 아니면 어려운 얘기다. “변하지 않기 위해,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지만, 변함없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야마구치 사장에게 인터뷰를 마치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그의 답이 돌아왔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긴자라는 거리에 와서 가고 싶은 가게로 남는다면 좋겠습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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