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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마라도 고양이를 위한 변명 [고은경의 반려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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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뿔쇠오리 새끼. 국립공원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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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은 천연기념물 뿔쇠오리보다 개체 수가 더 많은 고양이만 중요한가요?"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이 뿔쇠오리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에 사는 고양이의 대대적 포획을 검토 중(본보 1월 21일 자)이라는 보도 이후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해당 내용이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면서 '뿔쇠오리 보호가 시급한 만큼 고양이 포획이 당장 필요하다', '고양이 개체 수나 피해 현황 등 상황 파악이 먼저다' 등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먼저 해당 기사는 고양이가 뿔쇠오리보다 중요하다는 걸 얘기하고자 한 게 아님을 밝힌다. 마라도 내 고양이가 얼마나 살고 있는지, 또 어떤 고양이를 몇 마리나 포획할지, 이후 어떻게 관리할지 등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잡고 보는 식의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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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내 고양이의 왼쪽 귀 일부가 잘려 있다. 현재 80% 이상이 중성화되어 있다. 마라도 케어테이커 김정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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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라도 건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정책을 펼 때는 당연히 그 근거가 명확해야 하며 전문가∙이해관계자와의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초 문화재청은 고양이 포획 필요성에 대한 근거 자료도 없었고, 또 이 과정에서 전문가나 지역주민들의 의견은 전혀 묻지 않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마라도 내 대부분의 고양이를 포획해 입양 보내고, 입양 못 간 고양이들은 보호소에서 보호하겠다"고 했다. 길에 사는 고양이를 입양 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고양이의 수명이 10~20년인데 보호소에서 죽을 때까지 밥만 주는 게 과연 행복하겠냐"고 반문했더니 그는 대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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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인근 해상에서 포착된 국제적 멸종위기종 뿔쇠오리.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도지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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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책의 문제점은 또 있다. 뿔쇠오리가 고양이보다 중요하니, 고양이는 모두 분리해야 한다는 해결 방식이 과연 적절하냐는 것이다. 외래종 유입에 취약한 섬에 고양이를 데려가 그 수가 늘어난 것 자체부터 문제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마라도에서는 고양이와 지역주민들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고양이로 인한 뿔쇠오리 피해를 연구한 몇몇 논문에서조차 '완전 제거'가 아닌 '적정 개체 수'를 언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미 섬의 구성원이 된 고양이에게만 이제 와서 책임을 오롯이 물어야 할까.

고양이라고 다 같은 고양이도 아니다. 사람 손을 타는 고양이도 있고, 야생성이 강한 고양이도 있고, 그 경계선에 있는 고양이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고양이를 하나로 묶어 일괄적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너무 단순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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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내 고양이. 마라도 케어테이커 김정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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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점은 기초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본지 지적에 따라 문화재청이 뒤늦게라도 고립된 섬의 생물 피해 저감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전문가와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협의체가 만들어졌다는 거다. 특히 지금까지 수년째 마라도 내 고양이를 놓고 논란이 있었음에도 논의 테이블이 한 번도 마련된 적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마라도 내 뿔쇠오리와 고양이, 또 고양이를 돌보는 주민들의 상생을 위한 방안 마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누구 하나 전혀 피해를 보지 않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 이번 마라도 사례가 앞으로 유사한 상황에서 선례가 될 수 있는 만큼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하길 바란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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