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우주비행사를 그린 영화 '퍼스트맨' 이후 '바빌론'으로 다시 뭉친 데이미언 셔젤 감독(왼쪽)과 주연 배우 브래드 피트가 지난달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바빌론' 포토콜 행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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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 ‘라라랜드’를 만든 하버드 출신 콤비 데이미언 셔젤 감독,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가 또 다시 새로운 영화음악에 도전했다. 1일 개봉한 신작 ‘바빌론’은 100년 전 할리우드 영화산업 초기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1920년대 할리우드판 ‘라라랜드’처럼 낭만적 이야기일 거란 기대는 금물이다.
파티에서 발탁된 야성적 시골 소녀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가 눈물 연기 하나로 무성영화 시기 신데렐라로 부상하고, 유성영화 전환 초기 카메라 소음을 막기 위해 간이 상자에 들어가 있던 촬영감독이 더위와 호흡 곤란으로 사망하는 사건 등 세계 최대 영화 공장의 초기 풍경이 사진첩 넘기듯 펼쳐진다.
톱스타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토비 맥과이어를 비롯한 250여명 출연진, LA의 황홀한 전경, 화려한 7000여벌 의상이 3시간 넘는 상영시간(188분) 동안 곡예 같은 이미지를 선사한다.
할리우드 초기 고전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쳐 흐르지만, 이를 술과 섹스, 마약, 토사물, 기행이 뒤범벅된 타블로이드지 가십란처럼 과장되게 그려낸 전개에는 평가가 엇갈린다. 할리우드를 바벨탑의 고대 도시 ‘바빌론’에 빗대어가며 신화 이면을 들춰내려 한 시도가 흑역사의 유려한 전시에 그쳤다는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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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감독 최저 평점…美매체 "코카인에 취한 난장판"
1일 개봉한 영화 '바빌론'(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할리우드에서 꿈 하나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사건들을 그렸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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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먼저 개봉한 미국 현지에선 “영화를 찬양하는 척만 하는 조증 무질서”(타임지) “코카인에 취한 난장판”(콜리더) 등 혹독한 반응이 쏟아졌다. “올해 가장 야심찬 영화”(월스트리트 저널)란 지지도 있지만, 영상 콘텐트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100% 만점에 언론‧평단, 대중 평가는 각각 55%, 52%. 셔젤 감독 필모그래피 중 가장 저조한 평가다.
그럼에도 1920년대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음악은 놀랍다는 평가다. 음악 작업만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미 지난달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받았고, 다음 달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미술‧의상상 후보에도 올라있다. 셔젤 감독과 허위츠 음악감독이 세운 작곡 원칙은 ‘차별화’. 20년대를 풍미한 재즈 뿐 아니라 이탈리아 오페라부터 아프리카 스타일 타악기, 쿠바‧멕시코‧중국‧중동‧하와이‧트리니다드‧그리스 등 다국적 음악, 20년대 발명된 전자악기 테레민까지 총동원했다.
허위츠 음악감독은 지난달 미국영화협회 웹진 인터뷰에서 “데미언(셔젤 감독)은 1920년대 음악으로 알려진 것들은 당시 실존한 음악의 일부라 봤다. 그가 작성해준 90곡의 참고 곡 목록에는 댄스부터 EDM, 60년대 재즈, 라틴풍까지 온갖 음악이 있었다”면서 “자료 조사를 토대로 파티와 클럽, 인디 음악계까지 당시 연주되고 있었지만 녹음되어 전해오진 않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상상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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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오페라·라틴…20년대 녹음 안 된 음악 상상
셔젤 감독은 음악에 맞춰 장면의 편집 지점을 바꾸며 영화 전체의 리듬을 매만졌다. 주인공인 할리우드 스타 배우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가 석양을 등지고 키스신을 찍는 장면에선 바그너식 오케스트라 선율의 주제곡이 흐른다.
무성영화 시대에 실제 그랬듯 극 중 연주자들이 촬영장에 악기를 끌고 가 라이브로 배경음악을 연주한다. 넬리 라로이의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엔 트위스트풍 댄스곡을 들려준다.
진 켈리 주연의 뮤지컬 영화 ‘싱잉 인 더 레인’(1952)과 동명의 1929년 곡을 커버한 합창 장면도 있다. 영화배우로 성공하는 아프리카계 트럼펫 연주자 시드니 팔머(조반 아데포)의 재즈 연주는 유튜브 등에서 발굴한 실제 트럼펫 연주자들을 기용해 완성했다고 한다.
파티에 쓸 코끼리를 끌고 할리우드에 입성하는 멕시코 청년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와 우정을 넘나드는 넬리의 관계는 사운드 톤이 서로 다른 3대의 피아노를 섞어 부서질 듯한 느낌의 연주곡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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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 원조 '잇걸'·아시아계 레즈비언…실존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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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인물들의 실존 모델을 알고 보는 것도 영화의 감흥을 더한다. 시드니 팔머는 20년대 재즈 드러머이자 영화배우였고, 나이트클럽 사업으로 예술가‧스타들과 교류하며 부를 쌓은 커티스 모스비를 토대로 만든 인물이다.
넬리 라로이는 영화 ‘잇(It)’(1927)으로 벼락 스타가 되며 ‘잇걸’(인기 여성)이란 단어의 시초가 됐지만, 스캔들과 신경 쇠약으로 스러져간 무성영화 배우 클라라 보우가 모델이 됐다.
잭 콘래드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에 따르면, 이 인물은 유성영화가 등장하며 쇠락했던 배우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존 길버트와 이탈리아 출신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넬리 라로이를 동성애로 이끄는 것으로 암시되는 아시아계 배우 레이디 페이 주(리 준 리)는 조연 역할이지만, 주역들만큼 눈길을 끈다. ‘피카딜리’(1929) '상하이 익스프레스'(1932) 등에 출연하며 주목받았던 아시아계 미국 여배우 안나 메이 웡이 실존 모델로 알려졌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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