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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국회 늑장에 알맹이 쏙 빠진 ‘안심전세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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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안심전세 애플리케이션’ 출시를 기념해 시연회를 하고 있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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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세 사기 예방을 위해 전세 계약을 맺을 때 필요한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안심전세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시장 안정화 노력이 엿보이고 공신력 있는 시세 파악으로 정보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면서도, 핵심이었던 악성 임대인의 신상과 세금 체납 내역을 알 수 없어 시세 확인에 불과한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전날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및 한국부동산원과 손잡고 안심전세앱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전세 사기 피해 방지방안의 후속 조치다.

먼저 수도권 내 빌라와 아파트의 시세와 전세가율, 낙찰가율 등의 정보를 담았다. 예를 들어 입주를 원하는 물건의 주소를 입력하면 ‘시세 3억원, 인근 지역 전세가율 70%, 경매낙찰가율 60%’라는 기본 정보가 뜨고 ‘위 주택은 2.1억원 이하로 전세 계약을 권유합니다, 경매낙찰 금액은 1.8억원, 3억원으로 계약할 시 손길 가능 금액은 1.2억원’ 등의 상세 내용을 안내받을 수 있다.

국토부는 오는 4월에는 공인중개사협회 및 감정평가사협회와 협업해 준공 전 주택의 추정 시세를 공개할 예정이다. 신축빌라는 준공 이전에 전세계약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는 7월에는 지방광역시 및 오피스텔로 시세 제공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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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전세 애플리케이션’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의 일부. [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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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전세 계약 시 세입자는 적정한 전셋값이나 집주인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신축빌라와 나홀로아파트처럼 거래가 없어 시세 파악이 불가능한 주택은 분양대행업체나 공인중개사들이 시세를 부풀려 과도한 보증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전세 계약 시 필요하지만 기관마다 흩어져 있는 행정정보도 한 번에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도 열람이 가능하다. 특히 등기부등본을 앱에서 한 번이라도 다운로드하면 이후 2년 6개월간 등기 내용이 변경될 때마다 임차인의 카카오톡으로 알림을 보낸다. 임차인이 입력한 전세금과 매매가를 고려해 이 집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지도 파악이 가능하다.

복수의 분양업계 관계자는 “전세 사기의 타깃이었던 신축빌라 시세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점과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임대인을 일차적으로 거르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시세 조회만으로 지능화·조직화되고 있는 전세 사기를 막을 수는 없기에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공개 예정이었던 임대인의 체납 내용과 나쁜 집주인 명단은 빠졌다. 관련 법 개정이 지연되면서다. 대신 계약 시점에 임대인이 앱을 통해 본인의 보증사고 이력을 현장에서 임차인에게 보여 줄 수 있도록 임시 대책을 마련했다.

빌라왕 사태를 겪었던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집주인이 세입자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시켜 주는 방식이라 불편함이 예상되고 가짜 앱을 이용한 신종 사기가 등장할까 봐 걱정된다”며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세상에는 별의별 사기꾼이 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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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전세 애플리케이션’의 현재 버전(v1.0)과 향후 버전(v2.0)의 차이. [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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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세시장을 뒤집어놨던 빌라왕은 종합부동산세 미납 규모가 커 더 문제가 됐다”며 “당시에는 경매 물건에 대해 국세보다 전세금을 먼저 돌려받을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응찰자도 나오지 않고 세입자들이 낙찰을 받을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초 전세 사기는 싹을 자르기 어려운 범죄인데,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이 빠져 있으니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부는 오는 4월부터는 임대인 동의를 받으면 보증사고 이력 등의 정보를 임차인의 휴대 전화로 송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정보 조회 요청을 푸시 형태로 보내고, 임대인이 동의 버튼을 누른다면 임차인의 앱 화면에 데이터가 표시되는 방식이다. 오는 7월부터는 법을 개정해 임대인 동의 없이 임차인이 보증사고 및 국세 체납 이력을 조회할 수 있도록 국세청 서버와 연계한다.

공인중개사협회의 표준 계약서 개정을 통해 임대인이 임차인 몰래 집을 파는 행위도 견제한다. 집주인이 전세 계약 기간에 세입자가 거주 중인 주택을 매도하게 된다면 이 사실을 미리 고지해야 한다. 새로운 임대인이 보증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어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경우 세입자는 계약 해지 및 보증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앞서 국토부는 HUG의 전세금보증보험 가입 대상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내린 바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악성 집주인과 세금 납부 정보를 공개하고, 전세금 반환보증제도의 가입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대표적인 사기 행각인 ‘무자본 갭투자’를 어느 정도 막는 효과가 예상된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임대인 정보 공개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면 실효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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