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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투자업계 사로잡은 삼겹살 스토리, 흑자 없이는 미래 없다 [생생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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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육각


“투자자들한테 수시로 전화가 옵니다. 전화로 딱 한 마디 물어봐요. ‘너희는 괜찮지?’.” 연 매출 약 1000억원 규모의 한 스타트업 IR 담당자가 해준 말입니다. 요즘 스타트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내주는 한 마디죠.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한계 상황에 맞딱뜨린 스타트업들 소식이 끊임 없이 들리고 있습니다. 투자 가뭄 여파는 작은 스타트업을 넘어 업계 ‘간판’ 격이던 스타트업들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당장 생존이 불투명해진 스타트업들은 수익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경영 전략을 전향적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정육각을 보겠습니다. 도축한 지 4일 지난 ‘초(超)신선 돼지고기’를 배송하며 입소문을 탄 정육각은 인상적인 창업 스토리와 뛰어난 품질의 제품으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사업의 시작은 김재연 대표의 삼겹살 장사였습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와 카이스트 졸업 후 미국 국무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에 갈 수 있었지만 모두 포기했죠. 삼겹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을 정도로 유별나게 삼겹살을 좋아했던 그는 용돈벌이로 고기를 떼다 직접 썰어 팔다가 2016년 온라인 정육점을 열었습니다.

다른 삼겹살과 다른 점은 품질이었습니다. 변변찮은 작업장을 마련해 막 도축한 고기를 사다가 직접 썰고 포장해 팔던 그는 그가 그토록 원하던 삼겹살의 가장 맛있는 상태, 이른바 ‘초신선’ 상태로 팔기 위해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죠. 농장과 계약을 맺어 고기를 공수한 뒤 주문이 들어오면 자체 공장에서 세절, 가공, 포장까지 진행하는 방식으로 ‘도축→육가공→세절→소매→소비자’ 단계를 ‘도축, 육가공→정육각→소비자’로 단축했습니다. 돼지고기 사후 경직이 풀리는 3일이 지나 4일째에 내놓는 정육각의 고기는, 그의 말에 따르면 “한 번 맛보면 절대 못 빠져나온다”고 합니다. 이런 사업 모델을 돼지고기를 넘어 닭고기, 달걀 등 농축수산물 전반으로 확장시켜 모든 것을 ‘초신선’으로 만들어 팔겠다는 게 김 대표의 야심이었습니다.

2017년 정육각 매출은 1억원에 못 미쳤습니다. 이후 2019년 41억원, 2020년 162억원, 2021년 401억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죠. 사업이 승승장구를 거두자 신사업도 거침없이 펼쳤습니다. 신사업 중 하나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한 자체 에어프라이어였습니다. “정육각 고기가 그렇게 맛있지 않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들에게 ‘우리 고기는 정말 맛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정육각 제품 맞춤형 조리기구를 만들려한 것이죠. 사람마다 상이한 조리 시간과 방법에서 비롯된 맛의 차이를 최적화하겠다는 야심찬 목표였습니다. 또 다른 신사업은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 개발이었습니다. 판로를 찾지 못해 버려지는 농축수산물이 적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농어민 등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기로 한 것이죠. 어르신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모듈을 각 농가에 설치하면, 이 모듈에 설치된 택배송장 프린터로 주문상품, 주문자 주소 등 정보를 농민들에게 자동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었죠. 정육각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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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각과 초록마을 구성원들이 협업을 위해 함께 회의를 하는 모습


화룡점정은 초록마을 인수였습니다. 동네 곳곳에 보이는 초록마을은 1999년 설립된 유기농 식품 유통매장으로 전국 4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입니다.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초록마을을 10년도 안 된 스타트업 정육각이 지난해 3월 900억원에 인수한다는 소식에 식품업계 20년차 한 관계자는 “처음 기사를 봤을 때 주어를 바꿔 읽었다. 초록마을이 인수 주체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놀라운 이슈였죠. 정육각이 초록마을 인수로 오프라인 유통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고기 중심에서 친환경 농산물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되면서 정육각은 또 다시 주목 받았습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파고가 정육각를 덮치며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투자가 위축되면서 스타트업에 몰리던 자금이 뚝 끊기자 정육각이 원하는 만큼의 자금 조달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애초 초록마을 인수 자금과 운영 자금 명목으로 약 1500억원을 유치할 계획이었으나 지난해 11월 시리즈D를 통해 470억원을 유치하는 데 그쳤습니다. 한때 기업가치가 2000억원에 달했던 정육각의 밸류는 1000억원대로 반토막 났습니다. 정육각과 초록마을이 각각 25억원, 41억원의 영업손실(2021년 기준)을 기록 중인 상황에서 “정육각이 과연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제기된 이유입니다.

수익성 확보가 급선무로 떠오르자 정육각은 전략을 급선회합니다. 지난해 12월 본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을 통보하고 신사업을 전격 중단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육각과 초록마을은 따로 사업한다”며 선을 긋던 정육각은 수익을 내기 위해 초록마을과의 시너지 창출에 올인합니다. 그 첫 작품이 올해 초 출범한 브랜드 ‘매일신선’입니다. 정육각이 자사 노하우를 적용한 ‘초신선’ 농축수산물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초록마을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신선 제품은 패키지 전면에 입고일 정보를 눈에 띄게 기재해 소비자가 식품 신선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입고일이 며칠 지난 제품은 경과일에 따라 할인율을 차등 적용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현재 돼지고기, 닭고기, 수산물을 팔고 있고, 다음달부터 채소 제품군도 선보일 계획이고, 현재 시범 운영 중인 6개 매장(당산점·미사역점·삼성점·송파위례점·신천역점·우장산역점)을 넘어 전 직영점 확대 및 가맹점 적용을 추진합니다.

투자 시장에 찬바람이 불지만 흑자 경영을 하는 스타트업들에는 여전히 돈이 몰리고 있습니다. 과연 정육각이 흑자 전환을 할 수 있을까요. 올해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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