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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택근의 묵언] ‘어른 김장하’가 있어 우린 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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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봤다. 설 연휴의 세상은 얼어붙었지만 화면은 따스했다. 남녘에서 올라온 봄바람 같았다. 김장하 선생(79)은 경남 사천과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 돈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우선 수없이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고등학교를 세우고 학교가 번듯하게 솟아오르자 국가에 헌납했다. 시민주로 출범한 지역신문을 매달 지원했다. 경상국립대와 여러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했다. 환경운동연합, 가정법률상담소 등 시민사회단체를 도왔다. 신분 타파와 차별 철폐를 외쳤던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직접 회장을 맡았다. 의미 있다고 여기는 모임에는 조용히 찾아가 뒷좌석에 앉았다.

경향신문

김택근 시인·작가


선생은 반세기 동안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도와준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몰랐다. 지난해 5월 한약방 문을 닫은 선생은 이제 다 나눠주었기에 ‘가진 것 없는’, 놀아보지 않아 ‘놀 줄 모르는’ 평범한 노인이 되었다. 그저 좋아하는 산을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오를 뿐이다. 그의 삶을 추적한 김주완 기자는 감동했다. “줬으면 그만이지, 아무런 보답도 보상도 반대급부나 심지어 고맙다는 인사치레도 바라지 않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 그 삶을 실천해온 분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누구에게 베풀어도 그 흔적이 마음에 남아있지 않은 최상의 경지를 말한다. 누구나 남을 도우면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남을 도왔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린다. 이런 일화가 있다. 청담 스님의 딸 비구니 묘엄이 탁발을 나갔다. 찬 바람이 가슴팍을 파고드는 동짓달이었다. 서른 집 대문을 여닫고 나서야 걸망이 묵직했다.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다리 밑에서 걸인들이 먹을 것을 달라 했다. 묘엄은 탁발한 쌀을 모두 퍼주었다. 또 한참을 걷다보니 여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떨고 있었다. 묘엄은 여인에게 속옷을 벗어주었다. 찬 바람에 온몸이 시렸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묘엄은 청담에게 보시를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묵묵히 얘기를 듣던 청담이 말했다. “기쁜 마음이 있으면 진정한 보시가 아니다. 도와주었다는 생각도 없어야 하거늘 어찌 기뻐하느냐.”

남을 돕고 그 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김장하 선생은 자신을 철저히 다스렸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노년에 자유와 평화를 얻었을 것이다. 선생은 ‘김장하 장학생’이 성공해서 은혜를 갚겠다고 하면 정색을 하고 물리쳤다. 그럴 작정이라면 이 사회에 갚으라고 했다.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 죄송하다는 사람에게는 등을 토닥였다. “무얼 바란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이렇듯 가슴 따뜻한 얘기를 접하면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떠오른다. 선생은 평생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남을 위해 살았다. 진실한 삶과 진정한 사랑을 작품으로 남기고 하늘로 떠났다. 권정생의 삶을 추적했던 필자는 선생이 남긴 일화 중에서 몇 장면은 품고 다닌다. 그중에서도 작은 마을교회 종지기로 일하며 새벽종을 치는 모습과 그때 하늘에 올렸던 선생의 기도는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문명(文名)을 날리기 전의 일이다.

“새벽하늘에 반짝이는 별의 수만큼 나의 바람은 한없이 많다. 종 줄을 한 번 한 번 잡아당기면서 하느님께 기도드리듯 쏟아지는 나의 바람들. 불치병을 가진 아랫마을 그 애의 건강을, 이 새벽에도 혼자 외롭게 주무시는 핏골산 밑 할머니의 앞날을, 통일이 와야만 할아버지를 뵐 수 있다는 윗마을 승국이 형제의 소원을, 그러고는 어서어서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이 와서 전쟁이 없어지고, 주림이 없어지고, 슬픔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사막에도 샘이 솟고, 무서운 사자와 어린애가 함께 뒹굴고, 독사의 굴에 어린이가 손을 넣어 장난치고, 다시는 헤어짐도 죽음도 없는 그런 나라가 오기를….” (권정생 ‘새벽종을 치면서’)

권정생 선생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을 것이다. 당신도 별이 되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기도와 눈물 속에 내릴 것이다. 이렇듯 남을 위한 기도가 모여서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 곁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권정생, 김장하가 있을 것이다. 지상에 남아있는 또 다른 권정생이 일어나 새벽종을 치고, 그 종소리에 잠을 깬 김장하가 한약방 문을 열 것이다. 이 글이 김장하 선생 노년의 평화를 깨뜨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죄송한 일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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