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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신학자’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영면…전 세계 추모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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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서 장례 미사

추기경 120명 등 수만여 명 운집

염수정·유흥식 추기경, 정순택 대주교 함께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 안장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위대한 신학자’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영면에 들었다.

5일(현지시간) 오전 9시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지난달 31일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거행됐다. 이날 장례 미사에는 추기경 120명, 주교 400명, 성직자 4000명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그를 추모하는 수만 명이 운집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를 비롯해 전 세계 13개국 지도자들이 개인 자격으로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우리나라는 오현주 신임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우리 정부를 대표해 장례 미사에 함께했다. 염수정·유흥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 등도 한국 천주교를 대표해 장례 미사에 참석, 베네딕토 16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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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가 진행되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장례 진행요원들이 베네딕토 16세가 안치된 관을 옮기고 있다(사진=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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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황의 장례 미사는 수석 추기경이 집전해왔지만, 베네딕토 16세의 장례 미사는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직접 집전했다. 베네딕토 16세가 즉위 8년 만인 2013년 건강 쇠약을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의 일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사임 후 바티칸의 한 수도원에서 지내왔다.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은 교회 2000년 역사상 두 번째 사례다. 1802년 비오 7세 교황이 전임 교황인 비오 6세의 장례식을 주례한 바 있다. 당시 나폴레옹 군에 의해 프랑스에 납치됐다 그곳에서 선종한 전직 교황의 장례를 3년이 지난 뒤 로마에서 다시 치렀다.

베네딕토 16세는 생전 간소한 장례식을 원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하지만 이날 장례 미사는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진행됐다. 오전 8시 50분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을 지나 성 베드로 광장 야외 제단 앞에 운구됐다. 삼나무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됐다.

무릎이 좋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단 옆 의자에 앉아 장례 미사를 주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에서 “그가 몇 년간 우리에게 베풀어준 지혜, 친절함, 헌신에 감사하다”며 “주님, 당신이 베네딕트의 목소리를 영원히 듣는 것이 당신의 기쁨이 되길”이라고 기원했다.

미사를 마친 관은 교황 수행원들의 어깨에 실려 다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운구됐다. 대성전 내 좁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 묘지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됐다. 이곳에는 역대 교황 91명이 안장돼 있다.

한편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난 베네딕토 16세는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05년 78세의 나이로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265대 교황에 올랐다. 교황으로 재임한 8년 동안 가톨릭의 정통 교리를 지키는데 앞장섰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보수 이론가로 명성을 얻었다. 교황 재임 중 한국의 이산가족 문제 등 한반도 평화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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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가운데)이 5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에서 기도하고 있다(사진=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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