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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문점 실무회의에 앞서 악수하는 남북 적십자 대표단
1970년대 열린 남북적십자회담과 북한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열린 실무회의 등에서 남북 간 거칠었던 당시 협상 분위기가 고스란히 기록으로 드러났습니다.
통일부는 이런 내용 등이 담긴 남북대화 사료집 제5권을 공개했습니다.
사료집에 따르면 남북은 1973년 11월부터 7차례의 적십자 대표회의와 25차례의 실무회의 등 1978년까지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직후인 1976년 8월 20일 열린 제18차 실무회의 자료를 보면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남측 대표가 "6월 19일 밤에는 중동부 전선에서 무장간첩을 침투시켜 군사정보를 탐지하려다 3명이 사살되었고 엊그제 18일에는 판문점 공동공비 구역 내에서 도끼 살인사건이 귀측 경비 장교의 살인 명령에 의해 발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강력 비판하자.
북측 대표는 책상을 치면서 "집어치우라"고 고성을 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측 대표는 이어 "우리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을 헐뜯는 민족 반역적인 발언에 대해 엄중히 규탄한다", "망언을 고의적으로 늘어놓았다"는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반발했습니다.
북측은 24차 실무회의에서는 "남조선의 수많은 감옥 속에는 민주인사 김대중, 시인 김지하를 비롯한 수천, 수만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들이 갖은 악형과 고문을 받으면서 철창 속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등 남측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비난했습니다.
남측 대표는 이에 "우리측에 대한 터무니 없는 비방 중상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맞섰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시 회담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 8·15 저격 사건, 땅굴 남침 사건,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에 대한 쌍방의 공방이 계속됐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1978년 3월 예정된 실무회의를 앞두고는 대외용인 평양방송을 통해 회의 연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측 대표가 끝내 오지 않은 1978년 3월 20일 제26차 실무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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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78년 3월 20일로 예정된 남북 적십자 제26차 실무회의를 하루 앞둔 3월 19일 '평양방송'을 통해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면서 실무회의 연기를 일방 통보했습니다.
북측은 "남조선 당국자들은 미국의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고 그들과 함께 방대한 병력과 대량살상무기들을 동원하여 대규모의 한미 연합작전 훈련을 벌임으로써 남북 관계를 극도로 첨예화시키고 정세를 한층 더 전쟁접경에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전쟁 광증으로서 적십자 인도주의 이념과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행동"이라고 비난하며 제26차 실무회의를 부득이하게 연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남측은 "한미연합작전훈련이 실무회의를 연기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며 판문점 회담장에서 북측 대표단을 기다렸지만 끝내 북측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진=통일부 제공, 연합뉴스)
김아영 기자(ni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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