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지질분석중 안피지 확인”
“세종, 왜국종이 질기다고 보고받고 왜닥나무 확보 지시” 세종실록 기록
통감속편 표지의 결손 부분을 메우는 모습.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
“왜국의 종이는 단단하고 질기다 하니, 만드는 법도 배워 오도록 하라.”(1428년 7월 1일)
세종실록 문구다. 세종은 재위 10년이 되던 해에 통신사를 파견해 ‘왜국의 종이’를 탐구해 오라고 명했다. 조선의 과학기술이 정점을 구가하던 세종 재위 기간, 일본은 우리 한지보다 우수한 종이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통신사는 “왜지가 질긴 것은 원료인 왜닥나무가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보고했고, 세종은 2년 뒤 예조(禮曹)에 왜닥나무를 쓰시마섬에서 구해 오라고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국보 ‘통감속편(通鑑續編·1422년)’이 실록에 나온 일본산 왜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보존 처리 과정에서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일본산 왜닥나무 종이로 제작된 조선 초기 고문헌의 실물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연구원 자문역인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통감속편의 가장 큰 특징은 종이”라며 “일본 왜닥나무로 만든 종이인 안피지로, 종이가 얇고 윤택이 나는 데다 부드러워 인쇄된 글씨가 선명하다”고 했다.
통감속편은 서지학과 인쇄기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아 1995년 국보 283호로 지정됐다. 1361년 원나라에서 편찬된 중국 역사서로, 1422년(세종 4년) 조선에 들어왔다. 당시 조선에선 외국 서적이 들어오면 동활자로 다시 책을 제작하는 게 관례였다. 조선에서 만든 통감속편은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1403년)와 세종 2년(1420년)에 계미자의 단점을 보완해 제작한 경자자가 같이 인쇄된 보기 드문 서적이다. 세계유산인 경주양동마을의 경주 손씨 문중이 연구원 장서각에 2003년 기탁했다.
장서각 수장고에서 20년 가까이 보낸 통감속편 6권은 물 얼룩이 있고, 종이 색이 변하거나 마모돼 있었다. 연구원은 지난해 5월 보존 처리 전문위원 6명을 투입해 지난달 말 1524장의 작업을 마쳤다. 김나형 연구원 전문위원은 “안피지는 습도가 10%만 올라도 쭈글쭈글해져 보통 15분 걸리는 장당 작업 시간이 초반엔 1시간 반 정도 소요됐다”고 했다.
통감속편에 안피지가 사용된 사실은 지질 분석 과정에서 확인됐다. 찢겨 나간 부분에 새 종이(메움지)를 덧대려면 문화재 원형과 동일하거나 가장 가까운 종이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배율 현미경 관찰과 전문 섬유 분석 방법을 사용했다. 국내에서는 안피지를 구할 수 없어 메움지는 안피지를 만드는 일본 고치현의 지식산업센터에서 가져왔다. 옥영정 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는 “통감속편은 지질 외에도 활자 유형 등 조선 초 문헌 제작 방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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