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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고금평의 열화일기] '썸바디' 배경음악에 쓰인 이은하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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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김창완이 쓴 동명이곡 '청춘'…일말의 죄책감이 낳은 심경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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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 /사진=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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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자와 사랑에 빠지는 자못 섬뜩한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에는 데이트앱이라는 최신 콘텐츠를 소재로 쓰면서 배경음악은 수십 년 전 '구식' 가요를 입히는 독특한 구성으로 묘한 맛과 멋을 선사한다.

시리즈 8화까지 쓰인 배경음악 중 가장 미묘하고 어깃장처럼 느껴지는 곡이 2화 마지막 장면에 흘러나온 노래다. 이은하가 1988년 낸 '청춘'이다. 이 곡은 산울림의 김창완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산울림 시절의 '청춘'까지 합하면 동명이곡이다.

산울림의 '청춘'이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하며 이미 사라진 자신의 청춘을 덤덤한 창법으로 회고한다면, 이은하의 '청춘'은 "슬픈 노래 한곡 들려주오/청춘은 길기도 한데/귀뚤이 소리 물러가면/달빛에 내 노래 젖어들겠지/소리 없는 눈물 베겟닛 적시네~"하며 좀더 구체적이고 감성적인 애가의 흔적을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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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창완이 지난 10월6일 '산울림 데뷔 45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뮤직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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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의 '청춘'이 4분의 4박자로 리듬이 평이한 반면, 이은하의 '청춘'은 4분의 3박자로 리듬이 통통 튄다. 무엇보다 이은하의 '청춘'은 클래식 현악기가 주는 날카롭고 중후한 멋이 변화무쌍하게 이어져 하나의 곡에서도 다양한 표현을 만날 수 있다. 막상 들으면 상쾌한 기분전환용 음악 같다. 여기에 이은하의 솔(soul)이 있는 가창력이 덧붙여져 곡은 깊으면서 가볍고 웅장하면서 경쾌하다.

알 수 없는 중화된 음색들 사이로 들리는 가사는 그러나 쓸쓸하고 외롭고 구슬픈 모든 비애의 현장을 수북이 쓸어담고 있다. 그런 미묘한 분위기가 연쇄살인마가 일을 저지른 후 느끼는 변화무쌍한 심경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이 곡은 2화에서 거의 3분 넘게 쓰인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경우가 아닌데도 길게 쓰인 것은 그만큼 그의 심정이 복합다변적이면서 야릇하고 신비로운 색감의 감성이 숨어있다는 걸 은연 중 밝히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이 심정을/달래나 주려고 부나/바람소리 낡은 창가에/한숨 소리처럼 깊기만 한데/누워도 마음은 동산에 뛰노네"

살인 또는 (살인) 방조의 심정을 아무도 모르는데, 그 복잡한 심정이 한숨 소리처럼 깊기만 하고 사이코패스 같은 행각은 동산에 뛰놀 듯 즐겁기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비유로 메시지를 읽으면 이 곡 만한 선곡이 없을 정도로 그 분위기를 적확히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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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 /사진=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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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은 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곡이 "여자의 청춘"이라고 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불러주는 노래라는 설명이다. "가질 것 줄 것도 없는 인생/어둠을 헤치는 불빛/멀리간 사람 말이 없고/지나간 시절은 물 따라가고/홀로 남아 발길 돌릴 수 없구나" 하는 마지막 가사처럼 여인이 혼자 남아 처량하게 쓸쓸히 늙어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김창완은 이 노래가 부인의 쓸쓸함을 담았지만, 살인자의 심경을 그린 배경음악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살인자의 심리는 아주 복잡할 것 같다"면서 "부인을 그렇게 만든 남편의 죄책감이 이 곡에 담겼듯, 살인자도 일말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해석했다.

독특한 리듬 때문일까. 가슴을 조이는 가사 때문일까. 때론 노래 한마디가 살인자의 공포감을 압도한다.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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