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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좌파 대통령, 16개월만에 탄핵…첫 여성 대통령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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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노조 지도자 출신으로 ‘부패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지난해 7월 페루 대통령이 된 페드로 카스티요(53)가 7일(현지시간) 취임 16개월 만에 부패 혐의로 탄핵당했다. 대통령직은 카스티요 정권의 2인자 디나 볼루아르테(60) 부통령이 승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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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이 지난 7일 수도 리마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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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통신과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 방송 등은 이날 페루 의회가 본회의를 열고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강행 처리했다고 전했다. 투표 결과 의결정족수 87명을 훨씬 넘긴 찬성 101표(반대 6표, 기권 10표)로 가결됐다. 페루 의회가 여당 50석, 야당 80석으로 구성된 것을 고려하면, 여당 의원 중 상당수가 탄핵에 가세한 것으로 파악된다. 페루는 의회에서 탄핵이 결정되면 헌법재판소 등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탄핵당한다.



카스티요 ‘의회 해산’ 선언, 반격 시도



앞서 카스티요는 탄핵 추진을 막기 위해 의회 해산을 선언하며 맞불을 놨다. 카스티요는 6일 자정, 이례적인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법치와 민주주의 회복을 바라는 민심에 따른 결정”이라며 의회 해산을 선언했다. 이어 비상정부를 수립하고 새 의회 구성을 위해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야간 통행(오후 10시~다음날 오전 4시)을 금지하는 시행령을 발표하고,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경찰 등 수뇌부의 대대적인 물갈이도 예고했다.

야당은 물론 페루 각계에서 즉각 “위헌적 쿠데타”라며 반발했다.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헌법재판소장은 “쿠데타가 발생했다”며 의회가 예정대로 탄핵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세사르 란다 경제·외무장관 등 카스티요 정권의 핵심 각료들도 “카스티요의 셀프 쿠데타”라며 사임했다. 볼루아르테 부통령마저 “의회 해산은 정치·제도적 위기를 악화하는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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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긴급소집된 의원들은 국회의사당에서 본회의를 연 뒤 탄핵안을 가결하고 디나 볼루아르테를 새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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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사상 최초 여성 대통령 취임



의회는 카스티요의 발표 직후 의원들을 긴급 소집하고, 당초 7일 오후로 예정됐던 본회의를 앞당겨 탄핵안을 서둘러 가결한 뒤 규정에 따라 볼루아르테 부통령을 새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호세 윌리엄스 사파타 국회의장이 ‘정치적 무능’을 이유로 카스티요를 탄핵했다고 발표하자 의회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페루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휴전을 요구한다”면서 “정파를 떠나 민심을 추스를 수 있는 새 내각을 9개월 이내에 구성할 것”이라고 전했다. 페루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볼루아르테는 카스티요의 나머지 임기(2026년 7월) 동안 정부를 이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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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디나 볼루아르테.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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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티요는 탄핵안 가결 직후 대통령궁에서 경찰서로 이송됐다. 검찰은 카스티요가 반란 혐의로 구금됐다고 밝혔다. 경찰 당국은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경찰서에 앉아 있는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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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이 수도 리마의 한 경찰서에 앉아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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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최초 좌파 대통령의 영화적 결말”



빈농의 아들이자 전직 초등학교 교사였던 카스티요는 급진 좌파 계열로, 엘리트 중심의 페루 정치권을 비난하며 지난해 7월 0.25%포인트 차이로 대선에 승리했다. 최초의 농민 출신 대통령으로 시선을 끈 카스티요는 ‘부패 척결’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취임 초기부터 가족과 측근에 특혜를 주고 직권남용을 했다는 부패 의혹에 시달렸다. 카스티요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나를 축출하려는 세력들의 음모”라며 “일방적인 마녀사냥”이라 주장해왔다.

하지만 카스티요가 임명한 80여 명의 장관은 전문성 부족은 물론 가정 폭력과 살인, 부패와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카스티요가 국가사업에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며 사익을 챙겨왔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페루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수도 리마에서 카스티요에 대한 지지율은 19%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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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시민들이 카스티요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불태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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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탄핵 투표는 카스티요의 취임 후 세 번째였다. 지난해 10월엔 찬성 46표, 올 3월엔 찬성 76표로 부결된 바 있다. NYT는 “좌파 지도자(카스티요)는 자신의 선거 공약을 이행하는 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면서 “페루 최초의 좌파 대통령으로 당선된 카스티요에 대한 영화적인 결말”이라고 전했다.



페루 곳곳에서 시위



페루는 카스티요의 탄핵으로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등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수도 리마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이 국기를 흔들며 카스티요의 몰락을 환호했지만, 아레키파시에서는 카스티요의 지지자들이 “페드로,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다”는 팻말을 들고 가두 행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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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티요 전 페루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7일 그의 퇴진에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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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칠레·멕시코·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은 페루의 정치적 안정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멕시코 외교부는 오는 14일 페루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중남미 태평양동맹 정상회담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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