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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은 조선 근대화 앞당긴 인물” 교황청 호평 '탄생' 박흥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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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개봉 영화 ‘탄생’ 감독

조선 최초 사제 김대건 생애 다뤄

25세 순교…조선 근대화 길 열어

중앙일보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탄생'은 근대의 길을 열어젖힌 청년 김대건(사진, 윤시윤)이 조선 최초 사제로 성장하는 대장정을 그린 모험 영화다. 사진 민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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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영화를 넘어 조선 근대를 열어젖힌 한사람의 모험담이죠. 『정감록』의 ‘해도진인’(海島眞人)이 딱 김대건 신부란 생각이 들었어요.”

조선 첫 가톨릭 사제 김대건(1821~1846) 전기 영화 ‘탄생’을 연출한 박흥식(60) 감독은 ‘청년 김대건’을 근대화의 선각자로 해석했다.

‘탄생’은 김대건 신부가 유네스코 ‘2021년 세계기념인물’에 선정된 지난해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 쇄국정책을 폈던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 박해 속에 평등‧박애 사상을 펼친 김대건 신부와 근대화 선각자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상영시간 150분에 걸쳐 진솔하고 꼼꼼하게 담아냈다.

시기적으론 김 신부가 1836년 15세에 최방제‧최양업과 조선교구 신학생에 발탁돼 마카오‧중국에서 유학, 1845년 프랑스인 페레올 주교 등과 함께 귀국해 이듬해 스물다섯에 새남터에서 순교하기까지 3574일의 여정을 담았다. 배우 윤시윤이 김 신부의 10년 세월을 연기했다.

그간 김 신부에 관한 다큐멘터리, 문학작품 등은 많이 나왔지만, 대작 상업 영화로 만들어진 건 처음이다. ‘탄생’의 총제작비는 150억원으로 알려졌다.



박흥식 "정감록 속 해도진인, 김대건 신부라 해석"



개봉 당일(11월 30일) 서울 용산구 새남터 기념성당에서 만난 박 감독은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이 밝힌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러 바다의 섬에서 온 참사람(진인)을 사제 서품 후 바닷길로 귀국한 김대건 신부에 빗댔다.

1845년 당시 김 신부가 직접 마련한 ‘라파엘호’는 나무못으로 널판을 이어 만든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어선(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홍준새 학예연구사 논문 ‘라파엘호 규모에 관한 고찰’)이다. 이 작은 배로 모두가 무모하다 여긴 망망대해를 폭풍우를 뚫고 건넜다.

김 신부는 불어‧라틴어가 유창하고 간단한 영어도 구사해 통역가로도 활동했다. 조정도 그를 주목했다. 천주교 지도자로 붙잡혀 옥살이하던 중에도 서구 열강에 위협받던 조선 정부 요청을 받아 세계지리 개략을 편술하고 영국제 세계지도를 번역, 직접 채색까지 해 제출했다고 전해진다.

박 감독은 김 신부가 “뱃길에 해적에 대비해 총을 준비할 만큼 치밀하고 용감했다”고 말했다. 김 신부가 마카오의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편지와 당대 교류한 프랑스 함선의 항해기를 토대로 김 신부가 천체와 수평선의 각도를 토대로 배의 위치를 판단하는 ‘육분위’를 쓸 줄 알았고 이를 위해 지금의 선글라스와 흡사한 중국식 녹색 안경을 끼는 등 신문물에 능숙했다고 추정했다.



"청년 김대건, 영국 장교 찰스 엘리엇도 만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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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감독은 "영화 '탄생'을 만들다 힘들거나 답답할 때마다 절두산 성지를 찾았다. 10번 넘게 찾아가 김대건 신부의 (동상) 손을 잡으며 용기를 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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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김 신부가 홍콩 초대총독을 지낸 영국 해군장교 찰스 엘리엇과 만난 정황도 찾아냈다.

“그간 천주교 내 한국어 번역판 기록에선 ‘샤를 엘리오’라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번역돼있어 몰랐는데 시기를 따져보니 아편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찰스 엘리엇이었어요. 서양 이양선의 시점에서 조선을 돌아본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란 책도 도움이 많이 됐죠.”

영화엔 당시 영국 군함이 조선 해안선을 샅샅이 훑고 간 역사와 더불어, 김 신부가 영국 대사를 만나 작지만 강한 조선을 얕볼 수 없게 만든 대화 장면도 실었다. 김 신부 순교 150주년 당시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낸 자료에 더해 김 신부와 사제들이 남긴 서한, 유럽 열강의 항해자료, 조선 조정 기록 등에 각본을 겸한 박 감독이 정조의 문체반정 배경을 주목한 시대적 해석과 상상을 보탰다.

그는 김 신부가 생존했다면 조선이 더 빨리 발전했을 것이라 거듭 강조했다. 서구에 해박할 뿐 아니라 계급‧성별의 귀천이 없음을 누구보다 앞장서 실천했다는 의미에서다.

“우리나라 역사학과에서 근대화 기점을 보통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보거든요. 그런데 서양에선 데카르트 말처럼 ‘스스로 생각하면서’ 근대가 열렸다고도 합니다. 조선도 유학으로 생각하다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게 정조 말이죠. 저는 학자는 아니지만, 조선의 근대는 서학과 동학의 평등개념에서 출발했다고 봐요. 대한민국이 역동적이잖아요. 지도자들이 불편하게 하면 국민이 가만있지 않죠. 그런 것도 여기에 근원이 있다고 봐요.”

신자가 아닌 박 감독이 초기 가톨릭 사제에 주목했던 이유다.



지난달 바티칸서 최초 공개…교황 "천만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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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오후(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 뉴 시노드 홀에서 열린 영화 '탄생' 시사회에서 영화가 끝난 뒤 박흥식 감독과 배우 윤시윤 등 주·조연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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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유년기를 담은 영화 ‘저 산 너머’(2020)를 본 유흥식 추기경이 이 작품에 전액을 투자한 건축가 남상원 회장에게 김대건 신부 영화 제작을 제안했고, 조선 시대 가톨릭 사제에 관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던 박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2년 전 시동을 걸었다.

영화 '역전의 명수'(2005)로 데뷔해 '경의선'(2007) '두 번째 스물'(2016)을 만든 박 감독에겐 6년만의 신작이다. 그는 5시간에 달하는 가편집본을 4부작 가량의 드라마로 확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탄생’은 지난달 16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첫 공개됐다. 박 감독 및 윤시윤, 윤경호, 김강우 등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인은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민족이다. 화장을 많이 한 미소가 아니라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태어난 미소다. 비극적인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근면한 한국인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항상 웃으면서 그 일을 했다”면서 영화의 흥행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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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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