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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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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행] 원불교 공회당부터 나바위성당까지... 비우고 채우며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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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종교 시설 연결한 익산 ‘아름다운 순례길’
한국일보

익산 나바위성당의 예수상 아래로 비닐하우스 농지가 펼쳐져 있다. 김대건 신부가 귀국길에 발을 디딘 곳으로, 그 옛날에는 성당 바로 아래까지 금강 물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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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는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다. 구도의 마음으로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 등 종교적 의미가 깊은 곳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대개 특정 종교에 치우치기 쉬운데, 익산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여러 종교를 망라한다. 언제 방문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시설이다.

시작은 익산 시내에 위치한 원불교 성지다.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1924년 본격적으로 포교 활동을 시작한 곳이자 열반에 든 장소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8동의 건물과 대종사의 유골을 봉안한 탑과 비석이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금강원, 종법실, 공회당, 구정원 등의 건물은 대부분 개량한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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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원불교 성지의 공회당. 1929년 지은 대중집회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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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원불교 성지는 불교 사찰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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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옆 커다란 정문을 통과해 오른쪽으로 돌면 문화재로 등재된 오래된 건물이 차례로 나오고, 그 끝에 대종사 탑이 위치한다. 경내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다. 불교 사찰의 가람 배치와 거리가 멀지만, 정갈한 정원이며 조형물을 보면 사찰 특유의 푸근함이 느껴진다.

여산면 소재지에는 가톨릭 순교지인 숲정이와 여산동헌, 여산향교가 있다. 여산은 조선시대에 익산 동북지역과 완주 일부까지 관할하던 독립된 현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관할 지역의 천주교인들이 관아가 있는 여산으로 끌려와 처형당했다. 동헌 앞 공터는 백지사(白紙死) 터로 불린다. 얼굴에 종이를 바르고 물을 붓는 가혹한 형벌이 행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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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여산면 숲정이 성지. 병인박해 때 인근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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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여산향교. 익산에는 이곳을 비롯해 4곳에 향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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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여산면의 가람 이병기 생가. 초가지만 제법 규모가 큰 양반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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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산향교가 있다. 유교를 근본 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교육기관이자 성현을 모시는 시설이다. 여산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에 설립됐고,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지방 유림들이 다시 지었다. 누각 형태의 강당 건물은 백지사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단아한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종교 시설은 아니지만 국문학자이자 시조작가인 가람 이병기(1891∼1968) 생가도 함께 둘러볼 것을 권한다. 가람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집으로, 조선 후기 양반집의 배치를 따르고 있다. 초가지붕의 안채와 사랑채, 연못 등이 조촐하면서도 고풍스럽다. 집 뒤에 키 큰 대나무가 숲을 이뤄 아늑함을 더한다. 생가 옆 가람문학관에 그의 작품과 학자로서의 성취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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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사의 무인 카페 '구달나'. 내부에 보온물통과 대추차 생강차 등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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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사의 무인 카페 '구달나'. 내부에 보온물통과 대추차 생강차 등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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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 북측 자락에는 심곡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신라 말기에 창건한 오래된 사찰이지만, 이 절에서 가장 유명한 건 무인 카페 ‘구달나’다. 자유롭게 좌석을 배치한 카페 실내를 아늑한 조명이 따스하게 감싸고 있다. 메뉴는 보온물통 옆에 놓인 녹차, 생강차, 대추차가 전부다. 가격은 마음 가는 만큼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이름처럼 소박한 차 한 잔으로 마음을 비우고 또 채우는 카페다. 사찰 뒤편 숲에는 16나한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차가운 겨울 숲에서 생사를 초월한 듯한 부처의 모습을 본다.

성당면의 두동교회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건물이다. 1929년 건축된 기역자 예배당으로, 한 교인이 채마밭 100여 평을 제공해 안면도 소나무를 사서 지었다고 한다. 기역자 구조는 서양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남녀 교인을 자연스럽게 분리하는 장치다. 1964년 바로 옆에 고딕양식의 새로운 예배당을 지었지만 옛 예배당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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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예배당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두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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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역자 구조로 남녀 예배 공간을 분리한 두동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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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북쪽 망성면에는 나바위성당이 있다. 한국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귀국하면서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 장소라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1907년 한옥으로 지었다가 1916년 벽돌 벽으로 개조해 전통 양식과 서양식 건축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형태다. 초기에는 두동교회와 마찬가지로 건물 내부에 칸막이 벽을 쳐 남녀 공간을 분리했다고 한다.

나바위는 넓은 바위라는 의미다. 성당 뒤쪽 언덕 꼭대기의 바위를 지칭한다. 바위 위에는 1915년 베르모렐 신부가 휴식과 기도를 위해 세운 망금정이 얹혀 있고, 그 옆에 김대건 신부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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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기와지붕에 서양식 건축양식이 결합된 나바위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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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뒤편 나바위에 망금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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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성당 뒤로 논산 강경읍과 금강 물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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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정 아래 바위 뒷면에는 마애삼존불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성당이 들어서기 전에는 불자들의 기도처였다는 증거다. 안내판을 찾기 쉽지 않고, 불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없어 다소 아쉽다. 망금정 너머로는 논산 강경과 연결되는 금강 물길이 유유히 흐른다. 그 옛날에는 나바위 바로 앞까지 강이었다고 한다.


익산=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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