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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승계 앞둔 오너기업의 ‘주가 누르기’…개미만 운다 [지배구조 딜레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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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주주가 자녀에게 지분을 넘겨줄 때가 그 회사의 주가가 가장 쌀 때잖아요.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만 늘어나니까 지주사는 주가를 내리기 바쁜 거죠”

승계를 앞둔 지주사들이 주가를 내리기 위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사례가 늘자 이를 우려하는 소액주주들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주사들은 주가를 누르기 위해 이익을 하향 조정하거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승계 자금을 마련한다. 승계에 유리한 구조로 주가를 조정하는 행위는 소액주주 이익에는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올리브영 IPO(기업공개) 이슈로 CJ그룹 3세들의 경영권 승계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두 자녀인 이선호·이경후 경영 리더가 그룹 내 지분율을 확대하면서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CJ올리브영이 상장작업을 본격화하면 지주사인 CJ 주가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 전에 CJ 지분율을 높여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2022년 들어 이경후·이선호 남매는 여러 차례에 걸쳐 CJ 보통주와 우선주를 사들였다. 이경후는 2022년 1월에 모두 4차례에 걸쳐 CJ 보통주 2만3316주, 15차례에 걸쳐 우선주 8584주를 장내에서 사들였다. 이선호 경영 리더는 1월 한 달 동안 모두 4차례에 걸쳐 CJ 보통주 3만3962주를 장내 매수했다. 같은 기간에 17차례에 걸쳐 우선주 1만5738주도 장내 매수했다.

이번 주식 매입으로 두 사람의 CJ 보통주 지분율은 이선호 경영 리더가 2.75%에서 2.87%로, 이경후는 1.19%에서 1.27%로 확대됐다.

CJ그룹은 ‘자녀들의 계열사 지분 확보 → 해당 계열사 덩치 키우기 → 계열사 지분을 지주사 지분 인수 재원으로 사용’ 순으로 승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이재현 회장이 보유한 CJ 신형우선주 184만주를 자녀인 이선호·이경후 경영리더에게 증여했다. 이 신형우선주는 8월 상장한 것으로, 보통주보다 가격이 싸고 10년 후인 2029년 보통주로 전환된다. 업계에서는 보통주 대비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신형우선주가 경영승계에 활용될 것이라고 관측해왔다.

그동안 CJ그룹 지주사 CJ의 주가 2015년 8월 30만5521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별다른 반등 없이 5년 동안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2019년 7월에는 10만 원대마저 무너졌고 현재(12월 1일 기준) 7만600원대까지 떨어졌다.

재계 서열 7위 한화는 2차전지, 수소, 우주, 글로벌 방위산업 등 잘나가는 사업을 두루 갖고 있으면서도 회사 주가가 낮아 소액주주로부터 반발이 크다.

한화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9279억원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이보다도 적은 2조1850억이다. 한화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10배, 주가순자산배율(PBR) 1.3배 등으로 모두 동종기업 대비 낮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 올해 6월 한화의 PBR은 0.6~0.7배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PBR이 1 미만이면 시총이 자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로 통상적으로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본다.

한화그룹 지주사인 한화의 주가가 10년째 제자리인 가운데 김승연 회장의 아들 삼형제가 지분 100%를 가진 한화에너지의 가치는 일취월장하고 있다. 이는 그룹 경영이 한화에너지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 소액주주모임 측은 “한화 주식은 현재 저평가됐을 뿐 아니라 더 근본적 문제는 지배구조 문제로 인해 미래 가치도 낮다는 점”라며 “장기적으로 세 아들이 지배하고 있는 한화에너지 쪽에 투자를 집중하거나 유망사업을 넘길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LG그룹과 계열분리 작업 중이던 LX그룹의 지주사 LX홀딩스도 주가 누르기 논란에 휩싸였다. LX그룹이 지주사 주가를 떨어뜨려 손쉽게 지분을 늘리려 한다며 소액주주들이 청와대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청원 게시 나흘 전 LX홀딩스 주가는 8610원, 한 달 뒤 주가는 1만700원이었다.
쿠키뉴스

자료=NH투자증권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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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국내 주요 그룹 지주사 주가는 순자산가치보다 평균 50% 이상 낮게 형성돼 있다. 이들 경영 승계에 따른 지주사들의 주가 누르기가 반복되면서 ‘투자가치 없는 주식’이라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 지주사 8곳의 주가가 평균 57% 할인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순자산가치 대비 주가 할인율은 CJ 59%, 한화 63%, SK 59%, 삼성물산 61%, LG 65% 등이다. 할인율이 높을수록 주가가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 중 하나는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저평가된 것이다. 상속 증여를 위해 일부러 배당을 잘 하지 않는다. 주주환원율 또한 낫다”면서 “기업가치에 걸맞게 주가가 형성되고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오를 만하면 기업에 의해 내려가는 게 반복되니 투자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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