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은행 유동성 ‘불안불안’…은행채·금리 손 못 대고 대출만 늘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이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시장 현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은행에 과도한 자금조달 경쟁을 자제하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은행이 당국의 자제령에 은행채 발행을 중단하고 수신금리도 인상하지 못하게 되자, 자금을 조달할 길이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대출은 꾸준히 늘어, 은행 유동성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이날까지 은행채 발행액은 12조8800억원, 상환액은 17조원으로, 4조1200억원이 순상환됐다. 당국이 지난달 23일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으면서 은행권에 은행채 발행을 자제하라고 요청한 결과다.

지난 9월만 해도 은행채 발행액은 25조8800억원, 순발행액은 7조4600억원이었다. 두 달 만에 발행액이 절반 이상 줄었고, 발행액이 상환액을 앞서던 추세도 멈췄다.

특히 최근 한 달 이상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은 만기가 돌아온 은행채를 상환하기만 했을 뿐 차환 발행한 이력이 없다. 이들 은행의 은행채 발행 실적은 지난달 21일 KB국민은행의 1400억원이 마지막이었다. 대표적 우량 채권인 은행채가 채권 발행 시장을 장악하면, 일반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더 줄면서 회사채의 발행 유찰과 자금 경색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게 정부가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한 배경이다.

동시에 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또 다른 수단인 수신금리 인상도 중단됐다. 은행 정기예금으로 시중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계속돼 2금융권의 유동성 문제가 심화하자 금융당국이 지난 14일부터 은행권에 ‘자금 조달 경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거듭 보내고 있어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2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으나, 과거와 달리 시중은행은 이를 예금 금리에 즉각 반영하지 않았다.

이처럼 자금이 들어올 길은 막혔지만 대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는 게 은행의 고민거리다. 레고랜드 사태로 단기 자금 시장이 경색된 후 당국이 은행권에 ‘기업 대출을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주문해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은행의 기업 원화 대출 잔액은 1169조2000억원으로, 한 달 새 13조7000억원 증가했다. 2009년 6월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10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5대 은행만 봐도 지난달 기업 대출 잔액이 전달보다 9조7717억원 급증했다.

금융당국이 은행채 발행, 수신금리 인상 등 은행의 자금 조달 수단은 묶고 대출은 권장하는 것에 대해 은행권은 난감해 하고 있다. 당장 이달 28일부터 올해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 규모만 해도 18조5904억원이다.

은행권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 건전성 지표가 악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채 차환 발행은 어려운데 대출은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라며 “이달 초·중순까지 거의 100% 수준이었던 LCR이 최근 90%대 후반으로 내려왔고, 12월에는 90%대 중반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현재의 자금시장 불안이 단기에 끝날 것으로 가정하고 은행에 양립할 수 없는 주문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러나 자금시장 경색이 계속되면 내년 1분기 이후에는 은행의 체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들은 금융위와의 비공개회의에서 은행채 발행 허용, LCR 기준 강화 유예 외 추가 완화,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규제 완화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 백래시의 소음에서 ‘반 걸음’ 여성들의 이야기 공간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