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할 권리와 당국의 취재활동 제한에 대한 美 법원의 판단
지난 2018년 11월7일 당시 트럼프 美 대통령과 설전하는 CNN 기자 |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미국 사회는 자유언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편이지만 언론의 취재할 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을 백악관 브리핑 등에서 배제하는 행태로 많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가 '국민의 적'이라고 비난해온 CNN 방송의 기자에게 백악관 출입을 금지한 일은 최근 대통령실의 MBC 기자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와 관련해 언급되기도 한다.
백악관은 2018년 11월 7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짐 어코스타 CNN 기자의 백악관 상시출입증을 취소했고, 이후 CNN은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출입 정지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CNN은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비판적인 보도에 보복하는 차원에서 출입을 금지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1조와 적법한 절차 없이는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 5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티머시 켈리 판사는 1977년 '셰릴 대 나이트' 판례를 인용해 백악관이 사전 통지와 반론 기회, 서면 결정 통보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는 언론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백악관이 헌법 5조를 위반해 어코스타 기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줬다며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백악관 출입증을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이후 백악관은 어코스타 기자에 대한 출입 정지를 일시 해제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다시 출입을 정지하려고 했다가 결국 출입증을 돌려줬으며 CNN도 소송을 철회하면서 사태가 종결됐다.
지난 2018년 11월 7일 당시 트럼프 美 대통령과 설전하는 CNN 기자 |
당시 CNN 소송에서 인용된 '셰릴 대 나이트' 판례는 미국에서 언론의 취재할 권리와 관련한 사건에 자주 등장하며 대통령실과 MBC의 논란에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아 보인다.
'더 네이션'(The Nation)의 기자 로버트 셰릴은 대통령 경호실이 백악관 출입증 발급을 거부하고 그 이유도 설명하지 않자 헌법 1조와 5조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1966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백악관은 일반인도 백악관을 출입할 수 없고, 언론의 접근권이 통상적으로 일반 대중이 누리는 접근권보다 크지 않다면서 보도 내용을 이유로 출입증 발급을 거부해야만 헌법 1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헌법 1조가 정부가 임의로 또는 보도 내용에 따라 출입증 발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백악관이 자발적으로 출입기자를 위한 언론 시설을 운영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일반 대중이 백악관 건물 대부분과 특히 언론 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반면 백악관 언론 시설은 워싱턴DC에서 근무하는 모든 진짜 기자에게 개방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자들을 위한 취재 출처로 백악관 언론 시설을 개방해온 이상 헌법 1조 언론의 자유가 보장하는 취재 활동의 보호에 따라 시설에 대한 접근을 임의로 또는 중대하지 않은 이유로 막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백악관의 취재 시설 제공이 의무는 아니지만 오랜 운영을 통해 취재 영역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이상 보호해야 할 권리라고 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출입증 발급을 명령해달라는 셰릴 기자의 청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경호실이 셰릴 기자가 1962년 텍사스주에서 폭행 혐의로 기소된 사실을 이유로 대통령의 안전에 위험이 된다고 판단해 출입증을 거부한 사실이 밝혀졌고, 법원은 대통령의 안전이 출입을 거부할만한 '중대한 공익'(compelling governmental interest)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미국 법원은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 헌법 권리를 제한하지 않고서는 달성할 수 없는 중대한 공익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
다만 법원은 경호실이 헌법 5조를 위반하지 않으려면 출입증 발급 거부와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공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공군1호기 탑승하는 취재진 |
'호놀룰루 스타 불레틴'과 이 신문의 시청 출입기자인 리처드 보레카가 1973년 12월 21일 보레카 기자의 시장실 출입을 금지한 호놀룰루시와 프랭크 파시 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보레카 대 파시' 소송도 주목할만하다.
당시 파시 시장은 보레카 기자가 시장과 시 행정에 대해 무책임하고 부정확하며 편파적이고 악의적으로 보도했다고 생각해 시 직원들에게 보레카의 시장실 출입을 금지하라고 지시했으며 이후 보레카는 시장실에서 열린 여러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에 하와이 연방지방법원은 정부가 헌법 1조의 보호를 받는 언론 자유를 제한하려면 그럴 만큼 중대한 공익이 걸려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지만 파시 시장이 그러지 못했고 보레카 기자는 헌법 권리를 침해당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보았다며 출입 금지를 해제하라고 명령했다.
특히 법원이 판결문에서 언론의 논조와 언론의 자유를 보호받을 권리는 별개라는 점을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새뮤얼 킹 판사는 "자유 언론이 반드시 천사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A free press is not necessarily an angelic press.) 신문들은 편을 든다. 특히 정치 경쟁에서 그렇다. 신문 기자들이 항상 정확하거나 객관적이지는 않다. 그들도 비판의 대상이 되며 정부 관료가 언론을 비판할 권리는 헌법 1조의 보장 범위에 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비판이 보도 내용 때문에 정부 기관의 권력을 이용해 언론이나 그 구성원을 위협 또는 징계하려는 시도로 바뀔 경우 덜 제한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중대한 공익이 걸려 있음을 입증해야 헌법상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객관성과 중립성을 표방하는 언론이 그 의무를 방기한다면 분명 비판받을 만한 일이다.
킹 판사가 지적했듯이 언론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MBC도 천사는 아닐 것이다. 이는 대부분 한국 언론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특정 언론의 보도 내용을 이유로 취재 활동을 제한하려면 미국 법원이 지적했듯이 그럴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먼저 마련하고 취재를 막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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