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직면 열흘 만에 파산보호 신청
세계적 거래소 FTX의 초고속 몰락
투자금 회수 불확실…대형사들도 물려
가상화폐 거래소 '도미노 위기' 우려
비트코인 등 가격폭락…호황기 前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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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량 기준 한 때 세계 3위였던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몰락하면서 시장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이곳에서 거래했거나 막대한 돈을 투자했던 이들은 자금 회수 가능성마저 불확실하다. 불과 며칠 만에 진행된 초대형 거래소의 초고속 몰락은 가상화폐(코인) 시장 자체에 대한 불신 심리에 불을 붙였다.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화폐 가격도 역대급 하락기를 맞고 있다.
순식간에 망한 초대형 거래소 FTX…조롱‧조사 대상으로 전락
올해 초 기준 기업가치가 44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평가받았던 FTX는 11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계열사이자 가상화폐 투자업체인 알라메다리서치의 수상한 대차대조표 관련 코인데스크US의 보도가 나온 지 불과 9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파산보호란 법원 감독 하에 구조조정 등으로 회생을 시도하는 제도다.가상화폐 전문매체인 코인데스크US는 지난 2일 알라메다리서치의 대차대조표를 검토한 결과 146억 달러 자산 가운데 대부분이 FTX 자체 발행 코인인 FTT 또는 FTT 담보대출물이라고 분석했다. 달러 등이 아닌 초고위험자산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에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마저 6일 보유 FTT 청산 입장을 밝히면서 해당 코인의 가격이 폭락하는 한편, 이용자들도 신속하게 돈을 빼 FTX는 유동성 위기에 휩쓸렸다.
바이낸스가 FTX 인수를 검토하며 극적 반전이 이뤄지는 듯 했지만 8일 검토 하루 만에 무산으로 귀결되며 위기 확산에 가속도가 붙었다. 업계 전문가는 이런 과정에 대해 "알라메다 재무제표의 유동성 문제는 곧 FTX 고객 자산의 위험이라는 인식이 번지면서 FTX에서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이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파산보호 신청 대상엔 130여개 계열사까지 포함됐으며, 신청서상 FTX의 부채는 최대 500억 달러(66조 3천억 원)에 이른다. 채권자도 10만 명 이상인데, 부채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나락으로 떨어진 FTX엔 이제 각종 의혹이 뒤따르고 있다. 계열사로 옮겨진 100억 달러 규모의 고객자금 행방, 파산보호 신청 직후 FTX 거래 플랫폼에서 대량으로 빠져나간 가상화폐의 실체 등을 둘러싸고 물음표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FTX는 미국 당국의 조사 대상이 됐다. 2019년 FTX를 만들어 미국 최연소 억만장자 타이틀을 얻었던 30세의 샘 뱅크먼-프리드도 CEO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업계에서 "멍청하다"는 평가를 듣는 처지가 됐다.
발 묶인 개인 투자자 자금은…"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할 수도"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몰락으로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세를 보이는 14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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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의 출금이 막히면서 미처 발을 빼지 못한 고객들이 자산을 그대로 날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에선 은행이 파산하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험 등을 통해 고객이 일정 부분 예치금을 회수할 수 있지만, 가상화폐의 경우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CNN은 "가상화폐는 법정 통화가 아니며 항상 유가 증권으로도 간주되지 않는다. 관련 규제도 만들어지는 단계이기 때문에 (은행 등과) 동일한 보호 장치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고객은 아무 것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FTX가 누구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정리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FTX 이용자들의 손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FTX 이용자 수는 1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웹사이트 분석 기업 시밀라웹은 지난달 FTX 웹사이트 접속이 가장 많았던 국가는 일본이었고, 2위는 한국이었다고 밝혔다. FTX는 국내 거래소와 달리 선물,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용자들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내 투자자가 정확히 몇 명이고, 묶여있는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당국도 FTX가 외국 거래소인데다가, 관련법 미비로 파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FTT 코인에 투자했던 이들도 손실을 떠안게 됐다. 추정 투자금은 20억 원 이상이다. 글로벌 가상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번 사태가 본격화 되기 직전 개당 22달러였던 FTT가격은 14일 1.3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국내 5대 거래소 가운데 FTT를 상장했던 고팍스와 코인원, 코빗은 오는 26일부터 FTT를 상장폐지하기로 했다.
FTX 대형 투자사들도 줄타격…가상화폐 시장은 '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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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의 몰락은 이 회사에 투자한 다른 금융사‧기관의 타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미국의 유명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캐피털도 그 중 하나인데, 각각 추정 손실액이 1억 달러, 2억 1350만 달러에 달한다. 일본 주식시장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12.73%나 폭락했다. 이밖에도 벤처캐피털 타이거글로벌과 패러다임을 비롯해 캐나다 온타리오 교사 연금 등 수많은 투자 주체들이 리스크에 노출됐다.
국내에선 지난 3월 FTX에 가상화폐 C2X(현 XPLA)를 상장한 게임회사 컴투스(코스닥 상장사)의 주가가 전 거래일보다 14.74% 곤두박질쳤다. 컴투스 그룹은 "FTX 거래소와 관련해 직접 투자한 바가 없어 재무적 손실은 전혀 없다"며 "XPLA팀은 코인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으며 출금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FTX에 최대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공지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연쇄 충격파 속 진원지인 가상화폐 시장은 최악의 시기를 맞고 있다. 특히 거래량 세계 20위 안에 드는 거래소 크립토닷컴의 자체 발행 코인인 크로노스 가격도 급격히 떨어져 '거래소 도미노 위기' 우려도 짙어지고 있다. 지난 8일까지만 해도 개당 0.12달러선을 웃돌았던 해당 코인의 가격은 이날 오전 한 때 0.06달러를 밑돌았다. 크립토닷컴이 보유한 이더리움 상당량이 게이트아이오라는 거래소로 송금된 사실이 알려진 뒤 크립토닷컴 측은 "실수"라며 회수에 나섰지만 거래소들끼리 '자금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차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홍콩의 가상화폐 거래소 AAX도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을 이유로 13일(현지시간) 인출을 일정 기간 중단했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자체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1만 6천달러 안팎까지 떨어졌다. 호황기 시작점이었던 2020년 11월 가격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FTX가 적극 지원했던 솔라나 코인의 가격은 일주일 사이 거의 3분의1 토막 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상화폐 관련 국내 논의의 초점도 '육성'에서 '강력 규제'로 옮겨가는 기류다. 이명순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이날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 민당정 간담회에서 "테라‧루나사태, 셀시우스 파산, FTX 사태까지 실패 사례가 연이어 발생해 신뢰가 무너진 한 해였다"며 "규제 없는 시장은 사상누각이므로 규제 마련이 조속이 이뤄져야 함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윤창현 특위 위원장도 "지금 터지는 많은 문제가 우리에게 얘기해주는 건 거래 활성화 이전에 규율이나 질서가 잘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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