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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시론] 감사원이 수시감사하면 법 위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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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종보 전 헌법재판연구원장·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감사원이 최근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이후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찬반 논쟁이 뜨겁다. 반대하는 쪽 주장의 핵심은 “감사원법이 주요 감사계획을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원장이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수시감사를 개시한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최종 감사 보고가 나온 이후까지도 심각한 법적 분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에 이 주장은 타당성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헌법이 감사원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감사원이 회계검사뿐만 아니라 직무감찰도 한다는 것이다(제97조). 둘째, 감사원은 감사원장과 감사위원으로 구성되는 합의제 관청이라는 것이다(제98조). 셋째, 감사원은 대통령과 국회에 결산을 보고한다는 것이다(제99조). 그밖에 더 자세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제100조). 감사원장과 감사위원의 권한 배분과 감사 개시 요건은 헌법이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감사원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감사원법은 감사원을 7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하면서(제3조), 감사원장에게 감사원을 대표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주고 있다(제4조). ‘감사원의 감사 정책과 주요 감사계획’ 그리고 ‘징계·시정·개선의 요구’와 같은 감사 결과의 처리는 감사위원회의가 의결하고(제12조), 회계검사·감찰·심사 결정을 포함한 감사원의 행정업무는 감사원장이 사무처를 지휘·감독하여 처리한다(제16조).



‘서해 공무원 피살’ 감사 논란 일어

감사개시, 감사위 의결 명시 안 돼

감사위는 사후승인 판단 권한만

중앙일보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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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감사원법은 감사 업무 수행과 관련된 최종적인 권한과 책임을 감사원장에게 귀속시키면서 정책 수준의 주요 감사 계획을 결정할 권한과 실제로 수행된 감사 결과의 처리를 통제할 권한을 감사위원회의에 배분하고 있다.

감사원법에는 감사 개시에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이 필요하다고 명시한 조항이 없다. 감사원법의 위임에 따라 감사원이 제정한 ‘감사 사무 처리 규칙’도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감사 개시의 필요조건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요 감사 계획’이 아니라 ‘모든 감사 계획’을 감사위원회의가 의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행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 감사위원회의가 의결한 주요 감사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더라도 감사원을 대표하는 감사원장의 지휘·감독하에 개시된 감사는 일단 적법하고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해석은 현실적인 필요성에도 부합한다. 감사가 필요한 상황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사전에 정교한 감사 계획을 미리 짜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주요 감사 계획에 반영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일절 감사할 수 없다면, 돌발 상황에 전혀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감사원은 헌법상 의무를 다할 수 없게 된다.

이런 해석은 기존 관행과도 일치한다. 감사원은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연간 감사 계획을 수립하고 사무처는 이에 따라 감사를 진행한다. 다만, 변화하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연간 감사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도 수시로 특정 사안 감사를 수행해 왔다. 그동안의 특정 사안 감사에는 연간 감사 계획에 포함된 사항보다 그렇지 않은 사항이 더 많았다. 과거 세월호 사건 감사도 연간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래도 중요한 사건은 감사 개시 전후에 감사위원회의에 보고하고 사전승인이나 사후추인을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람직한지는 감사원장의 판단에 맡겨져 있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감사 개시가 불법으로 되지는 않는다. 감사위원회의는 감사가 끝난 후 감사 보고서를 승인할지 말지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모든 권력이 그렇듯 감사원장의 권한도 적절하게 통제돼야 한다. 감사원장이 주요 감사 계획을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감사를 남발하는 경우에는 감사위원회의가 감사 결과 처리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통제하라는 것이 현행법이 정한 방침이다.

수시감사가 실제적인 필요성을 넘지 않도록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장차 더 정교한 입법과 새로운 관행을 쌓아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행법과 기존 관행을 무시하고 모든 수시감사를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원천봉쇄할 일은 아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종보 전헌법재판연구원장·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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