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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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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외교안보 수장, 해외주재 외교관들 나태·우월의식 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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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늦고 판단 빗나간다고 지적…"신문으로 아는 게 더 많을 때도"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아시아 근무 EU 외교관들 우월의식도 경계

연합뉴스

세르비아·코소보 정상회담 결과 발표하는 EU 외교수장
(브뤼셀 AP=연합뉴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2022년 8월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르비아·코소보 양국 정상회담이 끝난 뒤 회담 결과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2.8.19 leekm@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유럽연합(EU)의 외교안보 수장이 해외 주재 EU 외교관들의 나태와 거만을 강한 어조로 질책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호세프 보렐(75)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유럽 외 지역에 근무하는 유럽대외관계청(EEAS) 직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이들의 근무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EEAS는 EU의 외교부 겸 국방부에 해당하는 외교안보 업무 조직이며, 보렐 고위대표가 그 수장이다.

이 자리에는 해외 각국 주재 EU 대사 등 고위 외교관들이 대거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이 전한 참석자들의 말에 따르면 스페인 외교장관 출신인 보렐 고위대표는 조용히 듣고 있는 외교관들에게 "여러분들에게 꽃을 보내면서 훌륭하다느니, 업무 아주 잘 하고 있다느니, 만족스럽다느니,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가족이니 할 때가 아니다"라며 의례적 칭찬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여러분들 잘못을 추궁하고 망신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해야만 하는 게 있다. 여러분들이 하루 24시간 내내 좀 더 대응 준비가 잘 돼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들이 담당한 주재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를 빨리, 실시간으로 해 줘야 한다"며 "내게 소식을 (먼저) 알려 주는 것은 여러분들이어야지, 그게 언론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종종 어디서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여러분들 보고서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보다 신문 읽고서 알게 되는 게 더 많다"며 "여러분들 보고가 종종 너무 늦게 온다"고 말했다.

더타임스는 보렐 고위대표가 이 말을 할 때 분위기를 "참석한 대사들은 '헉'했다"라는 말로 묘사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EU 외교관들이 정세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실력에 대해서도 매우 박한 평가를 내렸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EU가 오판에 오판을 거듭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처음에는 우리(EU)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며 "여기 브뤼셀(EU 본부)에서 미국인들이 우리에게 '러시아가 공격할 것이다. 러시아가 공격할 것이다'라고 계속 얘기하는데도 우리는 그 얘기를 믿기를 매우 주저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전화해 '러시아가 곧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고 알려 줬을 때도 EU 외교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EU)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저항할지도 예견하지 못했고, 또 푸틴이 전쟁을 확대하는 역량도 예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더타임스는 또 보렐 고위대표의 질책 중 전혀 예기치 못한 것도 있었다며, 일부 국가에 주재하는 EU 외교관들의 우월의식에 대한 지적을 꼽았다. 이 신문은 "가난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국가들에서 EU 직원들의 거만함은 전설적"이라고 발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일부 EU 외교관들이 EU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마땅할 주재국을 상대로 가르치려고 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 모델을 수출하려고 노력하지만, 남들이 이를 어떻게 여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다"며 "(일부 EU 외교관들이 하듯이) '이게 유일한 모델이고 가장 좋은 모델이니 당신들(주재국들)은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는 방식은 문화적, 역사적, 경제적 이유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문장을 외워 놓아라. '문제는 정체성이야, 멍청아'(It is the identity, stupid)"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처음 당선되던 1992년 선거운동을 할 때 선거전략 최고책임자를 맡았던 제임스 카빌이 만든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The economy, stupid)라는 유명한 선거구호를 인용한 것이다.

보렐 고위대표는 "이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체성'(이 문제)"라며 "어떤 정체성들은 떠오르고 있으며, 인정되고 수용되기를 원하며, '서방'(the West)식 접근에 뭉뚱그려지지 않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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