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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긴축 발 머니무브…기업대출 늘고, 가계는 주식서 예금·채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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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가파른 긴축에 돈의 합종연횡도 빨라지고 있다. 시장금리가 뛰며 가계의 여유 자금은 주식에서 은행 예·적금으로 몰린다. 가계 금융자산 중 주식의 비중은 20% 밑으로 내려왔다. 기업도 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 붙으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원자재 값 급등으로 늘어난 비용을 메우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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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21.6%로 역대 최대 수준에 이르렀던 가계 금융자산 내 주식·투자펀드의 비중은 올해 2분기 18.5%까지 떨어졌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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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분기 자금순환'(잠정) 통계에 따르면 비금융법인(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46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19조40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기업이 예금과 주식 등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은 59조6000억원에서 48조5000억원으로 줄어든 반면, 대출이나 채권발행 등으로 빌린 돈(자금 조달)이 79조원에서 95조4000억원으로 늘어난 결과다.

문혜정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기업의) 운전자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순조달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자금순환은 각 경제 주체 간의 금융 거래(자금흐름)을 파악한 것이다. 통상 가계는 저축과 투자로 다른 분야에 자금을 공급하는 순자금운용 부분으로, 기업은 자금을 공급받는 순자금조달 부분으로 파악한다.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은 회사채 발행에서 은행 대출로 이동했다. 기업이 올해 2분기 은행 등 금융기관 대출로 조달한 금액은 56조4000억원으로 1년 전(49조3000억원)보다 7조1000억원 늘었다. 특히 만기 1년 이하의 단기대출로 조달한 액수는 26조6000억원으로 1년 전(2조3000억원)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문 팀장은 “장기 대출보다 단기 대출 금리가 유리해 기업이 단기 대출 위주로 대출을 늘린 듯하다”고 말했다.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는 8조3000억원으로 1년 전(6조9000억원)보다 1조4000억원 늘었다. 다만 한국전력공사(한전) 등 공기업의 채권 발행이 9조1000억원을 차지했다. 민간기업의 채권 발행(-1000억원)은 오히려 감소했다.

기업이 채권 발행보다 은행 대출로 움직인 건 채권 발행에 따른 조달비용이 많이 늘어난 결과다. 지난해 2분기에 회사채 금리(AA-, 3년물)가 연 1.93%로 기업대출 금리(연 2.69%)보다 낮았는데, 올해 2분기에는 회사채 금리(연 3.87%)가 대출 금리(연 3.63%)보다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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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최근에는 회사채 금리가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6일 기준 회사채 금리는 연 5.231%로 올해 초(연 2.46%)보다 2배 이상 뛰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회사채 투자 수요가 얼어붙은 결과다. 채권값이 떨어지면 금리는 오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제외한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3440억원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며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받고 있지만, 은행의 기업대출 금리도 최근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기업대출 금리는 연 4.46%로 1년 전(연 3.14%)보다 1.32%포인트 올라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미국의 긴축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기업 성과가 나빠지면서 투자 위험도가 높아지는 등 기업의 차입여건이 개선되긴 힘들어 보인다”며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은 투자를 줄이거나 인건비 등 다른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계(개인사업자 포함)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액은 39조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분기(39조원)보다 14조5000억원 늘었다. 가계의 여윳돈이 는 건 자금조달(41조9000억원)이 1년 전(55조6000억원)보다 큰 폭으로 줄어든 결과다. 자산가격 하락과 대출금리 상승이 맞물리며 가계가 대출을 덜 받았다는 뜻이다. 자금운용(80조9000억원)은 1년 전(80조1000억원)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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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계의 자산 운용 방식도 달라졌다. 금리 상승과 안전자산 선호 등으로 주식에서 예·적금 등으로의 ‘역(逆) 머니무브’가 확연했다. 가계 운용자산 중 장기 저축성 예금은 2분기에만 17조5000억원 불었다. 1년 전 증가 폭(1000억원)에 커졌다. 같은 기간 채권 투자액도 5000억원 늘며 1년 전(-5조4000억원) 증가액보다 컸다. 반면 주식 투자액은 24조8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쳐 1년 전(31조9000억원)보다 증가 폭이 둔화했다.

가계 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은 20% 밑으로 다시 내려갔다. 올해 2분기 기준 주식 비중은 18.5%로 전 분기(20.1%)보다 1.6%포인트 감소했다. 금융자산 중 주식비중은 지난해 1분기(20.3%) 처음으로 20%를 넘어섰지만, 주가 하락 등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반면 예금 비중은 43.1%로 전 분기(41.8%)보다 2.3%포인트 증가했다.

총금융자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2경3331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3월 말보다 57조3000억원 줄었다. 주식가격 하락 등의 영향이 반영됐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2.13배로 전 분기 말(2.19배)보다 소폭 하락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자산(4922조3000억원)은 57조4000억원 감소했고, 금융부채(2311조4000억원)는 40조5000억원 늘어났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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