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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매경춘추] 칼로의 마지막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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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7월 미국 플로리다주 한 파티 현장, 턱시도를 빼입은 한 남자가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멕시코 예술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불태웠다. 큼지막한 마티니 잔 속 클립에 그림을 끼워 놓은 뒤 불을 붙였고 작품은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제목은 '불길한 유령들', 1944년 칼로가 일기장에 그렸던 그림이다. 칼로의 '그림일기'다. 당시 상황은 유튜브로 생중계됐는데, 여전히 '1000만달러짜리 프리다 칼로 그림의 소각'이라는 제목으로 남아 있다. 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예술사에서 초현실주의자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칼로지만 정작 자신은 초현실주의자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현실을 그리기 때문이다…나는 내 눈으로 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있는 그대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칼로의 그림은 내밀한 일기이고, 삶의 고통스러운 현실이고, 자신의 인생이자, 멕시코 사람들의 삶 자체였다. 그런 그림이 연기가 되고 재가 되었다.

작품을 불태운 사람은 'Frida.NFT'라는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 마르틴 모바라크. 원작을 고해상도로 디지털화한 후 NFT로 1만개의 에디션을 만들어 개당 3이더(ETH·약 5700만원)의 가상화폐로 팔겠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원작의 가치는 1000만달러(약 143억8000만원)로 추정한다.

모바라크는 "물리적 예술을 디지털 황금으로 변환시키는 '예술 연금술사'"라고 자처했다. 그는 "불행하고 아픈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해 세계의 불우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희귀한 예술 작품을 불태웠다"며 "재로부터 (부활해) 날아오르는 불사조처럼, 예술이 영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메타버스로 영구히 전환됐다"고 주장했다. 실물 원본을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원본의 가치를 온전히 디지털 NFT로 이전하겠다는 게 그의 취지였던 것. 예술계는 놀라움과 비통함에 빠졌다.

NFT에 대한 무지가 작품에 대한 반달리즘을 가져왔다. NFT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원본성, 희소성, 가치를 기록하고 증명하는 일종의 부동산 등기부 등본 같은 가치 중립적 기술일 뿐이다. NFT 그 자체만으로 저절로 가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원본 작품을 없앴다고 해서 원본 작품의 가치가 전적으로 이전되는 것도 아니고, 고해상도로 스캔했다고 해서 원본의 가치가 디지털로 이전되는 것도 아니다.

'불길한 유령들'은 사라지고, 1만개의 '디지털 복제품'만 남았을 뿐이다. 원작은 영원히 사라졌다. NFT에 대한, 예술의 '디지털 전환(DT)'에 대한 몰이해가 원작에 대한 파괴로 이어졌다. 디지털 전환을 빙자한 예술에 대한 파괴 공작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나의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일기다.

[캐슬린 김 변호사·홍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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