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민주화 빛과 소금" "텅 빈 심정"… 故 김동길 빈소 밤까지 조문행렬(종합)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진석·권성동·안철수 여권 조문 발길 줄이어

"자유민주주의 수호 가치 수호…사회 경종 울려"

뉴스1

5일 서울 서대문구 김옥길 기념관에 보수진영 원로인사인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2022.10.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이비슬 김동규 김예원 기자 = 고(故)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철학박사) 빈소에 늦은 밤까지 각계 인사의 조문이 이어졌다. 빈소는 고인의 서울 서대문구 자택 마당에 건립된 김옥길 기념관에 마련됐다.

5일 여권에서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

정진석 위원장은 조문 후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던 학자이자 정치인이자 명칼럼리스트였다"며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꼭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설파해오셨던 점을 감사히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화의 빛과 소금이셨다"며 "언제나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시고 우리에게 바른길을 제시했던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항상 뵐 때마다 아무리 본인이 힘들어도 유머와 따뜻함으로 맞이해 주셨던 분"이라며 "지난 대선 후보 단일화 때 저보고 '대의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들이 계속 기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이 제 결심에 정말 중요하게 왔다"고 밝혔다.

뉴스1

국민의힘 권성동, 김석기 의원이 5일 서울 서대문구 김옥길 기념관에 마련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빈소로 향하고 있다. 2022.10.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늦은 밤까지 정재계 인사 조문행렬

이날 밤에는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노태우 정부 시절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정무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차례로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재계에서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김영삼 정부 시절 구속 수감된 일을 떠올리며 "제가 억울한 감옥살이를 할 때 교도소에 21번이나 면회를 와주셨다"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반헌법적 작태를 신랄하게, 유머러스하게 비판하시던 분이었다. 그런 분을 떠나보내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문수 위원장은 조문 직후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라며 저에게 국가를 위해 기여하라고 늘 격려해주셨다"며 "못 다이룬 자유 통일의 꿈은 남은 저희가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빈소를 찾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나라의 많은 분들이 존경하는 역사적인 교수님이셨고, 저도 대학 다닐 때 교수님에게 배운 적이 있다"며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많이 존경했는데 돌아가시니 마음이 정말(안 좋다)"고 말했다.

뉴스1

5일 서울 서대문구 김옥길 기념관에 마련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빈소에 윤석열 대통령의 조화가 들어가고 있다. 2022.10.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약자에게 너그러운 큰 어른"…언론계 애도

빈소에는 조기와 조화가 속속 도착했지만 대부분 반송됐다. 고인이 생전에 조기와 조화를 받지 않기로 한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도 현장 관계자의 정중한 거절에 따라 반송됐다. 대신 오후에 도착한 윤 대통령의 조화는 빈소 정면 왼편에 놓였다.

이날 오후에는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창희 전 국회의장, 고 노태우 대통령 아들인 노재헌 변호사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강연과 방송 패널로도 왕성하게 활동한 고인 넋을 기리는 언론계 인사들의 발길도 줄을 이었다.

고인과 생전 인연이 깊었던 김동건 전 KBS 아나운서는 늦은 밤까지 가족들과 함께 빈소를 지켰다. 김 전 아나운서는 "며칠 전 고인의 누이분이 교수님의 사진 한 장을 보냈는데 이걸 보고 참 많이 울었다"며 "내가 연세대 1학년 때인 1958년 교수님의 수업을 처음 들었는데 참으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교수님은 참 의협심과 정의감이 대단했다. 사람이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강하기 쉬운데 교수님은 약자에게 참 너그러웠다"며 "박정희 유신시대 때도 15년형 나와도 계속 비판하면서 감옥까지 갔다왔다"고 덧붙였다.

빈소를 찾은 박종진 앵커는 "만날 때마다 암기한 시조를 들려주셔서 인상적이었다"며 "고인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신 훌륭한 어른이시자 이 나라의 큰 어른"이라고 떠올렸다.

뉴스1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김옥길 기념관에 마련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2.10.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게 뭡니까' 촌철살인 논객

숙환으로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김 교수는 지난 4일 오후 10시30분쯤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지난 2월 코로나19 확진 판정 뒤 회복됐지만 고령에 따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 끝내 완쾌하지 못했다.

고인은 생전에 약속한 바에 따라 시신을 연세대 의과대학에, 서대문구 자택은 누나고(故)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의 모교인 이화여대에 기부한다. 장례는 자택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지면 발인은 7일이다. 유족으로는 여동생인 옥영·수옥씨가 있다.

1928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월남해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미국 에반스빌대와 보스턴대에서 각각 사학과 철학을 공부해 문사철(文史哲)을 섭렵했고 100권 안팎의 저서를 남겼다.

김 교수는 1994년 신민당을 창당하고 정치활동을 하다가 고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했었다. 나비 넥타이와 콧수염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고인은 1980년대 정치평론을 하면서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말년에는 보수진영 원로이자 보수논객으로 활동했다.

b3@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