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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유병호 문자’ 감사원 감찰 이어지나…“정치적 중립성 스스로 무너뜨려”“필요하다면 포렌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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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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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 관련 언론 대응을 보고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비단 이번뿐 아니라 특정감사 업무와 관련해 감사원과 대통령실이 상시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헌법기관으로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유 사무총장에 대한 감사원 내부의 감찰 또는 진상조사가 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제는 유 사무총장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보내는 장면이 뉴스1에 포착되면서 불거졌다. 감사원은 3시간여 뒤 “서해 공무원 사건 감사가 적법절차를 준수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는데, 이에 앞서 대통령실에 자료 발송 사실을 사전 보고한 것이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감사기관이지만 헌법 해석상 대통령은 감사원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전날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조사 시도와 관련해 “감사원은 헌법기관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뭐라고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의 세입·세출 결산,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 등에 대한 감찰이라는 감사원 직무의 성격상 고도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견제·감시의 대상과 주체가 한 몸이 되면 애초 기관의 운영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에 보고하는 형식을 띤 유 사무총장의 문자메시지 발송은 행정부와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감사원의 기본 설립 취지를 거스른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불거진 문 전 대통령 서면조사 파문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언급하며 거리 두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정작 뒤에서는 대통령실과 감사원 실세 사무총장이 긴밀히 소통하는 장면에 노출된 것이다. 야당은 유 사무총장이 지속적으로 대통령실에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감사원을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사원법 제2조 1항은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례에서 ‘감사원법이 감사원의 인사·조직과 예산 편성상의 독립성 존중, 감사위원의 임기 보장·신분 보장·겸직 및 정치운동의 금지 등을 규정하는 것은 감사원의 직무상, 기능상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명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중립에 대한 감사원의 신뢰를 사무총장이 스스로 허물었다”며 부적절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사원장이 대통령에게 보고는 할 수 있지만, 감사 중인 사안에 대해 ‘대통령 하명에 의한 감사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한 보고를 하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해 보인다”며 “감사원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행위”라고 했다.

진상 규명을 위한 즉각적인 감찰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법조인은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사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과 관련된 중대 사안으로 이 문제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으면 감사원에 대한 불신을 가라앉히기 힘들다”며 “정치적 중립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감사원 스스로 사무총장에 대한 감찰에 착수해야 하며 (문자메시지가 오간) 휴대전화도 확보해 포렌식을 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 문제로 논란을 빚은 법원이나 검찰의 경우 문제 행위에 대한 내부 감찰 뿐 아니라 사법 처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협력 사례’로 기재한 법원행정처 문건들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은 뒤 관련자들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2012년 검찰 내부게시판에 실명으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가 실수로 기자에게 ‘개혁을 하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 우리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번엔 박근혜가 된다’는 문자를 보낸 검사는 사표를 쓰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학자는 “감사원의 제도적인 역할에 비춰봤을 때 (문자메시지 보고는) 잘못된 행태”라며 “다만 감사원이 정부의 부속기관으로 돼 있으면서 스스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는 구조에서 발생한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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